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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해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다. <나라야마 부시코>(1983) <우나기>(1997)로 두 차례나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거장 감독과의 만남에 기자회견장은 시작 전부터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마무라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부대행사인 ‘부산 프로모션 플랜(PPP)’에 신작 <신주쿠 벚꽃 판타지>를 내놓고 전체 제작비 중 약 4억 엔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온 참이었다.


1926년생이니 당시 그의 나이 75세. 나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거동부터 얼굴색, 언어구사 능력 등에 이르기까지 이마무라의 건강은 심상치 않아 보였다. 1시간 남짓한 길지않은 기자회견 내내 그는 힘에 부친듯 기자들이 퍼붓는 질문에 짧게 대답했고, 그나마도 종종 질문의 방향과 어긋나곤 했다. 

영화제작과 관련해 쓸만한 답변은 이마무라의 30년 지기이자 제작자인 가와무라 기요노부가 대부분 대신했다. 그 해 발표했던 화제작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을 도대체 어떻게 완성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요즘 촬영장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해 ‘액션’을 외친다는 소문도 있다”고 넌지시 전했고, 그의 상태를 봤을 때 그 소문이 사실인듯 보였다.


그러나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눌한 말투 속에서도 간간히 튀어나오던 이마무라의 영화에 대한 의지와 에너지였다. 그는 “한국은 일본에 비해 젊은 감독이 많아서 부럽다”라며 “(한국영화를) 직접 느끼고 싶어서 부산을 찾았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서너 편 더 영화를 만들고 싶다”던 그는 1930년대 일본 신주쿠 유곽에서 자라난 소년의 성장기를 소재로 한 <신주쿠 벚꽃 판타지>에 강한 집념을 나타냈다. 그 이후 이 영화가 완성됐다는 소식이 없으니 투자자를 찾지 못한 탓이었는지 아니면 이마무라의 건강 탓이었는지 모르겠다.

   

1926년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이마무라는 50년대 초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으로 일하면서 영화계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1958년 내놓은 <도둑맞은 욕정><끝없는 욕망> 이후 그는 일관되게 창녀, 무당, 호스티스, 범죄자, 죽음을 앞둔 산골노인 등 경쟁사회에 밀려난 주변부의 삶에 시선을 맞췄다.

<감각의 제국> 등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오시마 나기사가 ‘일본영화의 사무라이’란 별명답게 세련되고 예리한 작품세계를 나타냈다면 이마무라 쇼헤이는 ‘일본영화의 인류학자’란 별명처럼 인간 본성에 대한 끈질긴 관찰력과 우직함, 돌발성, 그리고 다듬어지지 않은 에너지가 분출하는 영화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우리나라의 김기영 감독과 공통점이 많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 곤충기>(1963) <인류학입문>(1966) <신들의 깊은 욕망>(1968) <복수는 나의 것>(1979) 등이 이마무라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작품들. 특히 여성의 에로티시즘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이라고 여겼던 이마무라의 주제의식은 그의 전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역할을 했다.

이마무라는 80년대 초반 <나라야마 부시코>로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전세계 영화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산골마을에서 고려장을 앞둔 노인과 그 가족들의 삶이란 특이한 소재도 소재였지만, 생명에 대한 이마무라의 넘쳐흐르는 경이와 애정은 영화를 보는 동서양의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 이마무라가 만년에 내놓은 우화적이고 다분히 유머러스한 <우나기><간장선생>(1998)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등은 전성기 때 그의 영화의 무모할 정도로 끓어넘쳤던 에너지를 사랑한 관객들에게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마무라는 이들 작품을 통해 성(性)이야말로 세상사의 모든 갈등과 번민, 또는 이념조차도 뛰어넘는 최고의 가치, 생명력의 원천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말년의 피카소와 마티스가 어린아이 장난 같이 보이는 색종이 그림 등을 통해 일체의 장식과 가식을 모두 털어버린 순수로 되돌아가려 했던 것과 공통된다고 하겠다.

 이마무라의 마지막 작품은 9.11테러를 소재로 한 옴니버스 영화 <2001년 9월 11일>(2002). 평생 생명의 소중함을 역설했던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만든 영화가 테러로 인해 초래된 엄청난 비극을 다루는 것이었다니 그 영화를 만들면서 이 노감독의 심정이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지 짐작이 간다. 

Posted by bluefox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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