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 1974년 6월 26일 오전 8시를 조금 지난 시각, 미국 오하이오주 트로이에 있는 마시 Marsh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기계음이 울려퍼졌다. 마트 직원 셰론 부캐넌 Sharon Buchanan이 ‘리글리스 주시 프루트 껌 Wrigley’s Juicy Fruit Gum’’ 10개들이 한 팩에 붙어있는 검은 줄무늬 스티커를 계산대 스캐너에 통과시킨 순간이었다. 한해 전 미국 슈퍼마켓특별위원회가 표준 바코드 Barcode인 세계상품코드(UPC)를 식료품업계 표준으로 승인한지 약 1년만에 드디어 매장에서 실제로 사용이 이뤄진 것이었다. 버나드 실버와 조지프 우드랜드가 바코드 개발을 시작한지 26년, 특허권을 얻은지 22년만이었다.
마시 슈퍼마켓에 울려 퍼진 ‘삑~’ 소리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바코드의 실용화를 알리는 것이었던 동시에 유통업의 대혁명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마시 슈퍼마켓이 첫 바코드 실용화 점포로 선정된 데에는 스캐너와 계산기를 생산하는 내셔널 캐시 레지스터사가 오하이오주에 있었던 데다가, 저울 등을 생산하는 호바트 코퍼레이션의 본사가 트로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슈퍼마켓 운영에 필수적인 기술을 제공하는 두 회사의 협력 덕분에 마시 슈퍼마켓이 바코드 1호점이 된 것이다. 마시 슈퍼마켓의 직원은 6월 25일 영업이 끝난 후 밤을 새다시피해 수많은 상품들에 바코드 스티커를 부착했고, 다음날 아침 개장하자마자 클라이드 도슨 Clyde Dawson이란 이름의 직원이 테스트용으로 집어든 껌은 전 세계 바코드 1호 상품이란 기록을 세워게 됐다. 도슨이 껌을 선택한 이유는 껌처럼 작은 크기의 상품에도 바코드를 부착해 신속하게 계산할 수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종 코로나 시대의 필수품 QR코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 있다. 하나는 마스크이고, 두 번째는 QR코드이다. 식당이나 커피숍, 관공서나 극장에 들어갈 때 등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전화 화면의 QR코드를 감지기에 대고 ‘삑’ 소리가 나야 입장허가를 받는 일이 일상이 됐다. QR은‘ 신속대응’이란 뜻을 가진 ‘퀵 리스폰스(Quick Response)’의 약칭으로, 1994년 일본 덴소사가 처음 개발한 2차원 바코드이다. 줄무늬로 된 바코드와 달리 QR코드는 사각형 안에 방대한 정보를 담을 수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다. 바코드가 가로 방향(1차원)으로 밖에 정보를 담을 수 없었던 것에 비해, 세로와 가로 2차원으로 정보를 담을 수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QR코드의 어머니 격인 바코드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됐을까.
194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드렉셀 Drexel 대학교 대학원 전자엔지니어링학과에 다니던 버나드 실버 Bernard Silverrnard는 지역 식품점 사장이 판매되는 제품을 빨리 계산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그는 친구 노먼 조지프 우드랜드 Norman Joseph Woodland와 함께 연구를 시작했고, 1949년 두 사람의 발명에 대한 특허권을 신청해 1952년 정식으로 인정을 받았다. 바코드가 줄무늬로 이뤄진데 대해선, 우드랜드가 모스 부호 Morse Code를 상품계산에 이용할 방법을 찾던 중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손가락으로 줄을 긋는 장난을 하다가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우드랜드는 한 인터뷰에서 “모래장난을 하면서 (모스 부호의) 점과 줄들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이지는 모르겠지만 모래 속에 찔러 넣었던 손을 빼냈는데, 모래 위에 줄 4개가 생겨 있는 것이었다. 그 때 ”와! 줄이 4개 있네. (모스 부호의)점과 줄을 굵은 줄과 가는 줄로 바꿀 수있겠는데?“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두 사람이 만들어낸 최초의 바코드는 오늘날과 같은 직사각형이 아니라 원형이었다.어떤 방향에서도 인식이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마치 과녁처럼 여러개의 굵고 가는 선들로 이뤄진 둥근 모양이 황소의 눈을 닮았다고 해서, 이 바코드는 ‘황소의 눈(Bullseye)’으로 불렸다. 실버와 우드랜드는 자외선 잉크로 고유의 부호를 가진 원형 바코드를 만들었고, 500와트짜리 백열등을 이용해 굵고 가는 검은 선과 흰색 면의 빛반사를 전기적 파동으로 바꿔주는 진공관 스캐너를 만들었다. 이 장치의 크기는 책상 만했다. 실험과정에서 백열등이 너무 뜨거워 바코드가 그려진 종이가 타버리는 일도 종종 벌어졌다. 자외선 잉크가 번지면서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실버와 우드랜드는 1949년 바코드 특허권을 신청했다. 특허의 이름은 ‘분류 기구와 방법(Classifying Apparatus and Method)’. 1952년 10월 7일, 실버와 우드랜드는 바코드 기술의 특허권리를 법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바코드가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당시엔 컴퓨터 시스템이 일반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1962년, 결국 두 사람은 1만5000달러란 헐값에 특허권을 필코 Philco 사에 팔았다. 필코는 TV와 진공관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특허권은 또다시 RCA사로 넘어간다. 같은해, 실버는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39세 나이에 사망했다. 1960년대 말, 미국에서 레이저 스캐너 기술이 개발되면서 바코드는 실용화 단계를 눈앞에서 두게 된다. 1971년 또는 1972년에는 IBM사의 엔지니어 조지 로러 George Laurer가 실버와 우드랜드의 바코드를 기반으로 해 오늘날과 같은 좁고 긴 막대기 형태의 바코드를 만들어냈다.
대형마트와 바코드의 운명적 만남
1973년 미국 슈퍼마켓특별위원회는 로러가 만든 바코드를 표준으로 한 세계상품코드(UPC : Universal Product Code)를 공식적으로 도입했다. 유럽에서도 1976년 말 13자리로 된 EAN(European Article Number)코드와 심볼을 채택했다. 우리나라는 1988년 EAN에 가입해 국가코드 880번을 부여받아 바코드를 도입했다.
상품에 붙어있는 바코드는 0에서 9까지의 숫자를 기호로 나타낸 검은색 줄과 흰 여백 그리고 13자리의 숫자로 이뤄져 있다. 그것들은 데이터 처리과정이 쉬운 2진 코드로 부호화해 바의 명암 차이와 선의 굵기 등에 의해 ‘0’과 ‘1’을 나타내는 직렬신호의 조합으로 표현된다. 즉 스캐너로 흑색바에 빛을 주사시켰을 때는 반사율이 적게 나타나고 흰 여백은 반사율이 높게 나타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13개의 숫자들 중 처음 세 개의 숫자 '880'은 한국, 다음의 네 개는 제조업자이고, 그 다음 다섯 개는 상품을 나타내는 고유번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바코드의 등장에는 20세기 소비사회의 꽃으로 불리는 대형마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 최초의 슈퍼마켓은 1916년 테네시 주 멤피스에 세워진 피글리 위글리 Piggly Wiggly로 알려져 있다.이 상점은 진열된 상품을 손님이 직접 계산대로 가져와 계산을 하는 이른바 ‘셀프 서비스’ 방식으로 운영됐다. 이전까지 미국의 상점에서는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주인이나 직원들이 계산대로 가져와 계산을 한 다음 내주는게 일반적인 판매방식이었다. 따라서 ‘셀프 서비스’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큰 규모의 슈퍼마켓은 1930년 8월 4일 미국 뉴욕에서 처음 등장했다. 마이클 컬렌 Michael Kullen이 뉴욕의 중심가와 떨어진 자메이카 거리에 대형 식료품 점의 문의 열었다. 가게 이름은 ‘킹 컬렌(King Kullen)’. 560㎡ 크기의 빈 창고를 개조해 만든 이 가게의 슬로건은 “(상품을) 높게 쌓아 (가격을) 낮게 팔라(Pile it high. Sell it low)”였다. 즉, 상품을 대량을 확보해 많은 고객들에게 싸게 파는 ‘박리다매’ 전략이었던 셈이다. ‘킹 컬렌’은 손님들이 가게에 비치된 작은 수레를 밀고 다니며 직접 물건들을 담아 계산대로 가져오도록 했다
‘킹 컬렌’이 성공하자 크로거, 세이프웨이 등 기존 식료품 체인 운영사들이 슈퍼마켓 시스템을 도입하게 됐고, 특히 크로거는 대형 주차장을 처음으로 설치해 손님들이 자동차를 타고 먼 곳으로부터 찾아올 수있도록 했다.2차세계대전 이후 자동차가 더욱 보급된 것과 동시에 미국은 물론 캐나다에서도 대형 슈퍼마켓 체인들이 속속 들어서게 된다. 특히 미국에서는 샘 월턴 Sam Walton이 1962년 7월 2일 아칸소 주 서북부의 작은 도시 로저스에 잡화점을 개점한 것을 시작으로 ‘월마트 스토어스 Walmart Stores’사를 세워 세계 최대 슈퍼마켓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슈퍼마켓의 발전에 바코드가 막대한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
스마트폰 시대와 QR코드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QR 코드의 발전을 가져왔다. QR코드 인식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정보를 이용할 수있게 되면서 비즈니스와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특히 QR코드는 공개 코드이기 때문에, 일본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용되고 있다.QR코드는 1167자리 숫자까지 취급할 수 있는 모델1과 7089자리의 모델 2가 있고, 4만자리 숫자를 취급하는 iQR코드, 위치 정보를 단순화한 마이크로 QR코드, 데이터 인식제한 기능을 가미해 정보보호를 강화한 SQRC, 사각형 안에 문자나 그림을 넣을 수 있는 프레임(Frame)QR코드 등 다양하게 발전해있다. 크기에 따라 버전1부터 버전 40까지 있다. 숫자와 알파벳 뿐만 아니라 한자도 저장할 수있고, 비교적 작은 용량의 동영상도 담을 수있다.
QR코드는 위치 찾기 패턴과 얼라인먼트 패턴, 셀 패턴으로 구성된다. 모든 QR코드의 세 모서리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사각형이 바로 위치찾기 패턴이다. 이 패턴은 QR코드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 빠른 정보 탐색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나침반 기능을 한다. 얼라인먼트 패턴은 QR코드가 파손되더라도 정보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며, 셀 패턴은 흑백 점과 흰색 여백을 통해 데이터를 저장하는 일을 한다.빛의 흡수와 반사를 감지하는 적외선 센서를 통해 QR코드에 담긴 정보를 읽어낸다는 점은 바코드의 원리와 똑같다. 무늬가 검은색이냐 흰색이냐에 따라서 컴퓨터 2진법 수로 표현되는 ‘0’과 ‘1’을 구분하는 방식도 바코드와 같다.
QR코드는 바코드에 비해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있다는 점이 최대장점이지만, 이를 이용해 악성코드 등을 담아 범죄에 이용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은행 거래를 하는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QR코드를 이용해 돈을 빼돌리는 이른바 ‘큐싱’이 국내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큐싱’이란 QR의 ‘큐’와 ‘피싱 phishing 사기’의 ‘싱’을 합친 신조어이다. ‘큐싱’이란 사용자가 정상적인 금융사이트에 접속을 하더라도 가짜 금융사이트로 연결이 되게 하고 가짜 금융사이트에서 추가적으로 인증이 필요한 것처럼 QR코드를 보여준 뒤 악성 앱이 설치되도록 유도하는 범죄이다. 앱을 통해서 보안카드 등 정보를 탈취하고 문자의 수신방해나 착신전환 서비스 설정 등 모바일 환경을 조작해서 소액결제와 자금이체 등 금전적인 이득을 취한다. 또한 문자메시지를 받고 웹사이트에 접속했다가 본인도 모르게 큰 돈이 결제되는 ‘스미싱’ 피해 사례도 많이 보고되고 있다. ‘스미싱’은 휴대전화의 단문메시지를 이용해서 개인정보를 탈취하고 금전피해를 끼치게 되는 전자금융사기 유형으로 SMS와 피싱의 합성어이다.
'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몰랐던 역사 11-태초에 가짜뉴스가 있었다...길고 긴 그 역사 (0) | 2021.06.04 |
---|---|
내가 몰랐던 역사10-그림들은 어디로 갔나...세기의 박물관 도난사건들 (1) | 2021.06.04 |
내가 몰랐던 역사9-피임은 어떻게 발전했나 (0) | 2021.03.17 |
내가 몰랐던 역사8- 지브롤터, 300년 넘게 계속되는 英-西갈등 (0) | 2021.03.17 |
내가 몰랐던 역사7-이란과 미국, 길고 긴 앙숙의 역사 (0) | 2021.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