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88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글쎄올시다

유라시아가 국제적인 화두다. 세계 각국이 부쩍 유라시아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저마다 자국의 영향권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오히려 때늦은 감이 들 정도다. 유라시아를 둘러싸고 요즘 한창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곳은 러시아와 유럽연합(EU)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유라시아 또는 중앙아시아의 구 소련국가들을 끌어모아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을 만드려는 야심을 드러낸지 이미 오래됐다. 러시아와 함께 '관세동맹'을 형성하고 있는 카자흐스탄, 벨로루시를 포함해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크라이나,아제르바이잔 등을 하나로 묶어 EU와 같은 경제공동체로 출범시켜 '옛 소련의 영광'을 부활시키려는게 푸틴의 꿈이다. E..

'협상의 달인' 하산 로하니

1986년 5월 27일, 이란 테헤란의 힐튼호텔 꼭대기 층에서 미국 백악관과 이란 정부의 관리들이 마주앉았다. 미국의 비호를 받던 팔레비 국왕이 이슬람 혁명으로 쫓겨나고,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이 과격파 학생시위대에 점거당하면서 두 나라 간에 외교관계가 단절된지 약 7년. 엄혹한 시절이었던만큼, 이날 회동은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이뤄졌다. 미국 측 대표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보좌관 올리버 노스 중령, 이란 측 대표는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대통령의 젊은 외교보좌관 하산 로하니였다. 노스 중령이 테헤란을 찾은 목적은 레바논 무장조직 헤즈볼라에 인질로 붙잡힌 미국 인질 석방이었다. 노스가 이란에 내놓은 제안은 헤즈볼라에 영향력을 행사해 인질을 석방시켜주면 미국산 미사일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2003 이라크 데자뷔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태를 지켜보는 요즘, 데자뷔(기시감)에 시달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뿐만 아니라 미국 정치인과 국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003년 이라크와 2013년 시리아는 신기할 정도로 판박이이다. 화학무기가 문제가 되는 것도 그렇고, 국제사회가 사분오열되고 있는 것도 똑같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고, 오바마는 조지 W 부시이다. 10년전 상황을 되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콜린 파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후세인 정권이 생산한 화학무기라며 흰색 가루가 든 조그만 유리병을 치켜올리며 열변을 토하던 모습이다. 하지만 미국은 결국 안보리 승인을 받는 데 실패했고, 이라크의 어느 곳에서도 화학무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심..

'더 테러 라이브'와 워싱턴포스트

'더 테러 라이브'를 본 후 극장 문을 나서는데 기분이 영 찜찜했다. 단지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때문은 아니었다. 사건이 전개되는 설정과 상황이 현장에 좀더 밀착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았다. 함께 영화를 본 이에게 불만스러웠던 느낌을 이야기했더니,단박에 "어디가서 그런 말하면 기자 티낸다는 소리나 듣는다" 는 충고가 나왔다. 인터넷 상의 관객 반응도 비슷했다. "개연성이 부족하다"" 마무리가 좀 허술했다"는 지적은 "청학동 훈장선생같은 말씀 그만해라""일베같은 극보수주의자냐" 등의 목소리에 파묻히는 분위기였다. 수많은 댓글들 중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정부와 언론 권력을 표현한 부분은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과 별반 다를 것이없다"는 지적이었다. 언론을 바라보는 지금 한국사회의 시선을 느낄..

'인빅터스'만델라...정복당하지 않는 영혼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생애 마지막 투쟁을 벌이고 있다. 흑백차별없는 세상, 폭력없는 세상, 누구나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평생 투쟁해온 그가 지금은 남아공 수도 프레토리아의 메디클리닉 심장병원 병상에 누워 꺼져가는 생명을 부여잡고, 아직은 사랑하는 국민 곁을 떠날 수없다는 듯 홀로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며칠전부터는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니 진정한 투사답다. 생명을 위한 그의 투쟁을 멀리서나마 지켜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시 한편이다. 반역죄로 27년간이나 수감생활을 했던 그가 로벤섬 교도소에서 즐겨 낭송하고, 동료 죄수들에게 들려주곤 했다는 영국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1849~1903)의 '인빅터스(Invictus)' 이다. 라틴어로 '정복되지 않는'이란 의미를..

칼럼/조세정의, 문제는 정부 ...미국은 어떻게 스위스를 무릎 꿇렸나

2008년 10월 17일,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모처에서 스위스 최대은행 UBS 간부와 미국 법무부 관계자들이 비밀리에 회동했다. UBS 측의 대표는 마르쿠스 디텔름 법률 고문, 미 법무부의 대표는 '탈세범들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조세 담당 검사 케빈 다우닝. 이날 전세계 금융계의 최대화제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휘청거리던 UBS가 하루전 스위스 연방정부로부터 60억 스위스프랑(약5조9300억원)의 구제금융을 받아 위기를 모면했다는 뉴스였다. 이처럼 파산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UBS의 운명이 월스트리트의 한 구석에서 진행됐던 미 법무부 관계자들의 만남으로 바뀌게 됐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4개월 뒤, UBS는 미국 부호들이 자사의 비밀계좌를 이용해 탈세를 저지르는데 도움을 주..

칼럼/이코노미스트 지가 말하지 않은 '노르딕 모델'의 그늘

한편의 통속소설이 학술논문보다 한 사회의 민낯을 더 잘 드러낼 때가 있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3부작'과 요 네스뵈의 '레드브레스트' 가 그런 경우다. '북구 스릴러'를 대표하는 두 작품은 복지와 평등, 개방사회를 대표하는스웨덴과 노르웨이에 나치 부역과 폭력의 역사가 얼마나 깊이 뿌리 박고 있으며, 이민자 등 소외계층이 사회 주변부에서 얼마나 위험에 노출돼있는지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라르손이 '밀레니엄 3부작'의 첫 편을 쓴 것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기 한해 전인 2003년 쯤이고 네스뵈가 '레드브레스트'를 출간한게 2000년이니, 극우주의자 아녜르스 브레이비크가 우토야 섬에서 광란의 살인파티를 벌이기 이미 10여년 전에 작가들은 지상낙원 복지국가의 허상을 꿰뚫어본 셈이다. 영국의 이코노미..

칼럼/방글라데시의 비극

지난 4월 24일 방글라데시 사바르에서 8층짜리 건물이 무너졌다. 8일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705명. 붕괴사건이 일어난지 열흘이 넘어가지만, 파장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방글라데시 집권여당의 청년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쌓은 정치적 연줄을 내세워 사바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온갖 비리를 저질렀던 건물주가 구속됐는가하면, 건물 안에 있던 8개 공장들과 하청계약을 맺고 저가의류를 생산해왔던 서구 대형 브랜드들은 발뺌하다가 결국 계약관계를 인정해 전세계 소비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사바르 인근 의류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비상통로조차없는 건물 안에 갇힌 근로자 112명이 사망한 후 방글라데시 노동계는 물론국제인권단체들이 정부와 서구 대형 브랜드들을 상대로 개선을 촉구했지만 달라진 ..

칼럼/매기의 추억... 마거릿 대처의 죽음을 보며

요즘 영국 쪽에서 전해져오는 뉴스를 보면 마치 나라가 두 쪽이 난 듯하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죽음과 장례식을 계기로 쌓이고 쌓인 갈등과 원망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탓이다. 오랫동안 외신을 다뤄오면서 영국을 관찰해왔지만, 지금처럼 영국여론이 양분되기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혼과 죽음을 둘러싸고 국론이 갈렸던 이후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기사 제목만 살펴봐도 대처에 관한 영국사회의 정반대 시각을 확연히 느낄 수있다. 텔레그래프,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등 정치적으로 보수성향이거나 경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들은 ‘위대한 새 역사의 창조자’‘ 자유의 투자’ 등으로 상찬하고, 가디언이나 인디펜던트 등 중도 진보성향 매체의 기사 제목에서는 ‘사악한 여자(wicked women)’같은 단어들이 쉽게 눈에 ..

칼럼/독일배우기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자동차를 타고 5시간쯤 달리면, 바이에른주의 튀링거바르테란 곳에 다다른다. 1990년 통일 전까지만해도 서독 쪽에서 분단선 너머 동독 튀링겐주 쪽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있는 장소였다. 이 곳 산 정상에는 약 26m 높이의 전망탑이 있다. 분단 시절 실향민들은 그 곳에 올라 멀리서나마 그리운 동쪽 고향땅을 바라보곤 했다. 독일 통일 20주년이 되던 해인 지난 2010년, 튀링거바르테의 전망탑에서 울창하게 검푸른 숲 한가운데로 지나가는 연녹색 띠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울컥해졌다. 지뢰와 철조망 투성이었던 군사분계선이 사라진지 20년, 한때는 죽음의 땅이었던 그 곳에 새로 돋아난 풀과 어린 나무들이 여리디여린 연녹색의 띠를 이루며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연은 그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