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88

버마를 추억하며

버마에 대한 기억은 아주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축구가 뭔지도 몰랐던 나이였는데, 그 때 흑백TV로 중계됐던 국제축구대회에서 우리나라와 경기를 벌인 한 나라의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졌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른바 ‘박스컵(정식명칭은 박정희대통령배 아시아 축구대회)’에서 한국과 맞서 싸우던 나라는 바로 버마였다. 그 나라 남자들은 치마를 입고 다닌다더라는 어른들의 말이 신기하게만 들렸다. 자료를 뒤져보니, 1971년도 제1회 박스컵축구대회부터 3회때까지 한국팀은 버마와 맞붙어 번번이 패배의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한국팀의 연이은 버마 굴욕을 지켜보던 국민들은 한숨과 눈물을 쏟아냈고, 신문마다 대표팀을 질타하느라 난리가 났었단다. 축구와 레슬링이 사실상 유일한 국민적 오락거리였던 때의 이야기다. ..

기후변화, 강건너 불 아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리고 있다. 안보부터 통상문제까지 여러현안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가 바로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감축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중국 국가주석의 6일 정상회담에서도 지구온난화 문제는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다. 외신들에 따르면 , 90분간의 만남동안 두 정상은 상당한 시간을 기후변화 심각성과 대책을 논의하는데 할애했다고 한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미국과 중국은 지구상에서 최대 환경오염국이다. 부시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기후변화는 전세계 인류의 복지 및 지속가능한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보다 강력한 국제협력에 의해 적절하게 해결돼야 한다”고 밝혔다. 내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푸틴의 근육과 미소

국가지도자에겐 ‘쉬는 일’도 정교한 전략에 따라 행하는 정치적 행보다. 휴가 모습이 한장의 사진으로 전세계에 보도된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그렇다. 최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취임후 첫 바캉스를 유럽의 수많은 휴양지들을 제쳐두고 굳이 미국 동부 메인주의 작은 마을 울페보로에서 보낸 것이 대표적 예라고 하겠다. 처음엔 이 사진도 매일 수백장씩 쏟아져 들어오는 외신사진들 중 하나쯤으로 생각했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설명은 간단했다. ‘푸틴 대통령이 모나코 국왕과 함께 투바 자치공화국 예니세이강변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푸틴이 왜 모나코 국왕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약 5000㎞나 떨어진 그 곳에서 함께 휴가를 보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제의 사진이 눈길을 ..

아프간 피랍사태... 테러리즘 시대에 살아가기

시작은 9·11테러였다. 두대의 비행기가 뉴욕 무역센터와 충돌해 엄청난 사상자들을 낳은 사건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전쟁을 발발시켰고, 두 나라에 대한 한국군의 파병으로 이어졌으며, 이제 아프간에서의 한국인 피랍사태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삼 자각하게 된 것은 먼 나라에서 벌어진 테러사건이 결국에는 우리의 삶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영국, 스페인과 독일이 테러로 고통받고 있을 때, 솔직히 그것은 남의 나라 일이었다. 하지만 이젠 우리도 당사자다. 테러리즘의 국제화 시대에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를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실감하게 된 셈이다. 남은 21명의 한국인 피랍자 모두 안전하게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지만, 어쨌든 이번 사건은 우리..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 퇴임... 글로벌 리더들의 신진대사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가 퇴임을 발표했다. 그는 10일 자신의 지역구인 세지필드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다음달 27일 여왕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역사상 200여년 만에 최연소 총리로 화려하게 취임한 지 10년 만에 정치 일선에서 퇴진하는 셈이다. 1997년 취임 당시 44세였던 그가 영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던진 이미지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전임자였던 마거릿 대처와 존 메이저 총리의 신중하지만 무겁고 무개성적이었던 느낌과 달리, 동안(童顔)의 블레어는 소년 같은 열정과 순수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지닌 지도자로 비쳤다. 특히 블레어가 빌 클린턴 당시 미국대통령과 ‘제3의 길’을 주창하면서 공개토론을 벌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소매를 걷어붙..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 누구의 책임인가

충격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평화롭던 대학 캠퍼스에서 수십명이 총기난사로 목숨을 잃은 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범인이 한국인이란 사실에 경악했던 사람들은 사건발생 이틀 뒤 공개된 동영상에 또다시 할 말을 잃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총기소유 허용을 비롯해 세계 최강대국의 너무나도 허술한 치안 대처,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치료 및 적절한 사전대응, 이민자가 느끼는 압박감과 고립, 모방을 부르는 지나치게 폭력적인 대중문화, 인간관계가 파편화한 현대사회 등등의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생계에 매달리느라 자녀들의 내면을 보살피지 못하는 이민가정의 현실, 자녀의 성공을 모든 가족의 성공으로 여기는 한국적 가족문화에서 비롯된 압박감 등이 비극적인 이번 사건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아! 바그람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자동차로 북쪽으로 달려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바그람 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미군 제1 병참기지이자 지상군 보급루트 역할을 하고 있는 이곳에는 한국의 다산 동의부대 200여명을 포함해 연합군 약 1만명이 주둔 중이다. 대형 격납고 3개를 비롯해 수많은 부대시설들이 들어서 있는데, 미군은 지난해 말 완공된 3.5㎞의 새 활주로 건설을 위해 무려 6800만달러를 쏟아부었다. 바그람 기지는 아프간 전쟁을 위해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인만큼 당연히 철통같은 방어체제를 갖추고 있다. 아프간인들에게 바그람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국민정서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1980년대 소련 점령시대와 이후 90년대 내전기의 상처를 고스란히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그람에 본격적인 ..

스펜서 김으로부터 온 편지

며칠전 미국 캘리포니아 소인이 찍힌 편지 한장을 받았다. 발신인은 스펜서 H 김. 지난해 11월말 눈 속에 갇힌 아내와 어린 두딸을 구하기 위해 오리건주 로키산자락을 헤매다가 1주일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던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 김의 아버지다. 그의 짧은 영문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당신이 보내준 위로와 관심에 아내 미아와 나는 진정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암흑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에, 위로의 메시지는 우리 삶에 빛을 가져다줬습니다. 제임스에 대한 기억은 영원히 밝게 빛날 겁니다. 우리 가족은 삶의 길을 따라 앞으로 걸어나가겠습니다. 또한 위기상황에서의 대처방식을 바꿔나가도록 촉구하는 노력을 통해 제임스를 기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편지 안에는 그가 지난달 워싱턴포스트지에 기고한 ‘내 ..

핵무기보다 무서운 환경재앙

남태평양의 파푸아 뉴기니에는 카터렛이란 작은 섬이 있다. 1767년 영국 탐험가 필립 카터렛에 의해 세계에 처음 알려지게 된 이 섬이 유명해진 것은 2005년 말부터다. 당시 이 곳의 주민은 약 1000명. 하지만 지금 카터렛은 사람이 살지 않는 불모의 섬이 됐다. 20년동안 망그로브 숲을 조성하고 방조제를 쌓는 등 지구온난화로 인해 자꾸만 높아지는 해수면과 투쟁을 벌여왔던 주민들이 결국 두 손 들고 인근의 섬들로 이주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최근 CNN은 파푸아 뉴기니 정부가 약 1년전부터 본격적으로 벌여온 주민 소개작업이 올해초 마무리됨에 따라 카터렛 섬은 세계 최초로 환경파괴에 의해 거주지가 완전폐쇄된 곳이란 기록을 세우게 됐다고 보도했다. 카터렛섬은 오는 2015년쯤이면 바닷물 속에 잠겨 지도상에서..

한해끝에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

해마다 이때쯤이면 국내외 언론들은 한해동안 큰 화제가 됐던 10대 뉴스나 10대 인물들을 선정 보도하곤 한다. 올해 10대 국제뉴스로는 이라크전 악화, 인도네시아 대규모 지진, 미 공화당의 중간선거 참패 , 북핵실험 파문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10대 국제인물로는 미국 의회 역사상 최초로 하원의장직에 오른 낸시 펠로시, ‘록스타’급 인기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 민주당 흑인 상원의원 배럭 오바마, 프랑스 최초의 여성대통령 후보가 된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 등등이 거론되고 있다. 2006년에도 많은 이름들이 국제뉴스를 장식했다. 그들 대부분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거뒀거나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굵직한 뉴스들 틈에서 죽음을 통해 주인공이 됐던 평범한 이름들이 있다. 첫번째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