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88

지하드의 봄

미군 철수 3년만에 이라크를 내전 상황에 몰아넣고 있는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는 의외로 우리와 인연이 깊다.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는 이름 , 김선일 때문이다. 2004년 6월, 이라크에서 일하던 삼십대 초반 청년 김선일이 극단 수니파 무장조직 '자마아트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일신교와 지하드)'에 피납된 후 처참하게 참수된 시신으로 바그다드 인근 도로에서 발견됐다. 얼굴을 반쯤 가리고 도열해 서있는 무장조직원들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살고 싶다"고 울부짓던 모습이 공개된지 불과 며칠만이었다. 당시 만해도 조지 W 부시 미국 정부가 벌인 전쟁 쯤으로만 여겨졌던 이라크 전의 참상이 갑자기 우리 사회 한가운데로 들이닥치는 순간이었다. 이 조직의 지도자 아부 무사 알 자르카위는 어찌나..

민주주의의 위기

유럽 정계가 지금 '멘붕'에 빠졌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의 말처럼 유럽 정치구도를 뒤엎는 '대지진'이다. 지난 22∼25일 유럽연합(EU) 28개국에서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 결과 이야기이다. 어느정도 예견됐던 일이지만, 극우 정당들의 바람은 과연 거셌다. 프랑스의 국민전선, 영국독립당 등 각국의 극우정당들은 이번 선거에서 기성정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데 힘입어, 지난 1979년 유럽의회 선거가 처음으로 치러진 이후 35년만에 처음으로 원내교섭단체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리스의 시리자,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당은 극우는 아니지만 반유럽연합(EU)을 내세워 경제난에 지친 유럽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그동안 '유럽만의 잔치'였던 유럽의회 선거가 올해 유난히 전 세계적인 핫이슈..

토마 피케티 신드롬 , 그리고 세월호

토마 피케티. 요즘 국제사회에서 가장 핫 인물을 꼽자면, 아마도 이 남자가 아닐까 싶다. 한달 남짓 전부터 외신에 간간히 등장하던 43세 프랑스 경제학자의 이름이 요즘은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거의 없을 지경이다. 그를 소개하는 기사 제목도 사뭇 선정적이다. '록스타 경제학자(가디언)''21세기의 (알렉시스)드 토크빌(파이낸셜타임스)''폭풍처럼 세계를 강타한 베스트셀러 저자(이코노미스트)'등 다양하다. '피케티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이 현상의 출발점은 최근 미국에서 영어 번역본이 출간된 '21세기 자본론'이란 한 권의 책이다. 300여년에 걸친 자본주의 역사와 변화과정을 약 700쪽에 걸쳐 복잡한 도표와 함께 분석한 이 책을 거칠게 요약하면'자본주의 위기론'이다. 인터뷰와 신문기고문, ..

'치매 우호 도시' 를 아시나요

브리스톨은 영국 잉글랜드 서부의 에이번 강에 딸린 항구 도시이다. 선박과 철도가 연결되는 좋은 교통 입지 덕분에 오래전부터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브리스톨 역사에서 빼놓을 수없는 것이 바로 흑인 노예무역이다. 기록에 따르면 1697년부터 1807년까지 약 50만명의 아프리카 노예들이 브리스톨 항구를 통해 들어와 영국과 유럽 곳곳으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지금은 영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명문대인 브리스톨대의 젊은 학생들로 활기가 넘쳐나는 교육, 문화도시가 됐다. 브리스톨이 유명한 또 한가지 이유는 좀 특이하다. 바로, 영국에서 치매환자이 가장 살기좋은 도시란 사실이다. 일명 '치매 우호 도시(Dementia Friendly City)'이다. 지난 10일 브리스톨대의 공공보건연구소인 '엘리자베스 블랙웰..

푸틴의 러시안 룰렛

지난 2010년 늦가을 독일 출장길에 조지아 기자 두 명을 만난 적이 있다. 멀리 극동에서 온 기자에게 두 사람이 제일 먼저 궁금해 한 것은 자기네 나라 이름 표기였다. 자국 정부가 공식 국명을 그루지야에서 조지아로 바꿨는데 알고 있냐는것이었다. 2년 전 전쟁을 치르며 철천지 원수가 된 러시아 말 대신 영어로 불러 달라는게 당시 조지아 정부의 입장이었다. 조지아어 식 표기는 '사카르트벨로'이다. "물론 알고 있다. 한국에선 벌써 조지아라고 부른다"고 했더니,두 사람의 얼굴이 환해졌다. 두번째 질문은 역시나 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조지아 기자는 "전쟁을 직접적으로 도발한 국가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냐"는 돌직구를 날렸다." 남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진압한다면서 군대를 동원하고 국경에서 러시..

보난자, 잭팟, 대박

지난 4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한 복판에 독특한 광고판이 등장했다. 한 재미교포가 사비를 들여 세운, 일명 '통일은 대박이다' 메시지 광고판이다. 기사에 따르면, 메시지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로 번역돼 게재됐다.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대박'이란 단어가 각국어로 어떻게 번역됐나 하는 점이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니, 영어로는 '보난자(Bonanza)'로 번역돼있었다. '보난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것이 미국의 인기 서부 드라마이다. 서부개척시대의 한 가족을 중심으로 가족애와 정의감 등을 그린 드라마로, 흑백TV 시절인 1970년대 초 국내에서도 방영돼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게 생각난다. '대박'을 굳이 '보난자'로 번역한 이유가 궁금해 사..

이 아이를 ... 시리아 비극과 한국의 인색한 지원외교

이스라 알 마스리(사진)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남쪽에 위치한 야르무크에서 태어난 어린 소녀이다. 한창 재롱을 떨 나이이지만, 아랍권 뉴스매체 알자지라 등이 최근 보도한 동영상 속의 이스라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먹지 못해 해골처럼 변해버린 얼굴과 앙상한 팔 다리, 노랗다 못해 누렇게 변해버린 피부를 한 이스라는 지금 야르무크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수많은 어린이와 어른들 중 한 명에 불과할 뿐이다. 반군이 장악한 이 곳을 정부군이 7개월째 봉쇄하고 공격을 퍼붓는 바람에 먹을 것을 포함해 생필품이 바닥난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동영상 속에서 엄마로 추정되는 한 여성 품 안에 안겨 있던 이스라는 이내 축 늘어지더니 결국 카메라 앞에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시리아 내전이 햇수로 4년째를 맞으면서 전해지는..

2013년, 올해의 보통 영웅들 ...그리고 교황님

해마다 이맘 때면 빠지지 않는 기사가 '올해의 인물'이다. 세계 각국의 매체들이 저마다 성격에 맞게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게 마련이지만, 대부분은 엄청난 파워와 지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고 싶은 것은 세상이 변화하는데 '반 발짝 쯤'은 기여한 보통사람들, 보통 영웅들의 존재이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터키의 '빨간 원피스의 여인'과 '서 있는 사람'이다. 지난 5월 말부터 6월 중순까지 이어진 시위현장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을 온 몸으로 맞는 '빨간 원피스의 여인'과 탁심 광장에 홀로 서서 침묵시위를 벌이던 '서 있는 사람'은 터키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초의 '빨간 원피스 여인' 제이다 순구르와 '서 있는 사람' 에르뎀 군두..

우크라이나, 태국, 불통의 지도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크라이나와 태국이 반정부 시위로 연일 몸살을 앓고 있다. 태국 경우 조금씩 안정을 찾아나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시위의 불길이 수그러드는 기미가 없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사퇴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영하로 곤두박질치는 추위를 견뎌가며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태국의 시위는 역사적 배경과 직접적인 원인은 달라도 의외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길게는 수십년, 짧게는 10년 넘게 치열한 정치갈등을 겪어왔고, 민의를 가볍게 여긴 지도자의 행보가 시위의 불씨 역할을 했으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정치세력을 용인하지 않는 독단성, 단기간 내에 정치변화를 이룩하고자하는 국민들의 조급증 때문에 조용한 날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두 나라는 마치 쌍동..

기후변화의 빈부경제학

지금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제19차 당사국총회(COP19)가 열리고 있다. 개막일인 지난 11일, 까무잡잡한 피부에 안경을 낀 남성이 연단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사흘전 슈퍼태풍 하이옌이 덮친 고국의 처참한 상황을 언급하는 나데레브 사노 필리핀 대표단 단장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물로 목이 메이는지 간간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바르샤바 회의장에서 지구온난화를 막기위한 획기적인 합의를 촉구하며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외신사진을 보니, "지금은 점심시간이지만 우리는 먹지 않는다"" 필리핀과 함께 하라""2012 보파 1067/2013 하이옌 10000+"라고 쓴 팻말을 들고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표정이 하나같이비장하다. 지난해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