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이란 파워갈등 드라마

bluefox61 2011. 10. 31. 12:11
지난 4월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 최고종교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간의 파워갈등이 좀처럼 수그러 들지 않고 있다. 
전임 대통령인 라프산자니와 하타미도 하메네이와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한때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었던 아마디네자드와 하메네이 간의 노골적인 갈등은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2009년 아마디네자드가 부정 대통령선거로 재선됐다는 논란에 휩싸여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때문에 실각할 위험에 처했을때, 무사비 대신 아마디네자드의 손을 들어준 사람이 바로 하메네이였다.
 
하지만, 급기야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1979년 이슬람 혁명이후 최초로 의회 청문회에 서는 대통령이 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AFP통신 등은 이란 의회가 30일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사기사건 연루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그를 소환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날 국회의원 290명 중 최소 73명이 대통령 조사 청원서에 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헌법에 따르면 전체의원 4분의 1 이상이 서명하면 대통령을 청문회에 소환할 수있다. 이에 따라 이번 주 중 경제각료들이 비공개로 의회 청문회에서 조사를 받을 예정이며, 조사결과에 따라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청문회 소환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알리 라리자니 국회의장이 이끄는 의회 강경파들은 샴세딘 호세이니 경제장관이 260만달러 규모의 경제사기 사건에 연루된 것과 관련해 탄핵을 추진 중이며, 이를 계기로 아마니네자드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은 의회가 청문회 소환을 시작으로 대통령의 탄핵절차를 시작했다고 30일 분석했다. 이슬람 공화국 32년 역사상 대통령이 탄핵된 적은 1981년 아볼하산 바니사드르 대통령 때가 유일하며, 의원 3분의 2가 찬성하면 탄핵이 가능하다. 

이란 최고권력층에서 벌어지는 이 정치드라마의 두 주인공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아마디네자드와 하메네이다. 

먼저 아마디네자드는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6번째 대통령으로 현재 '이슬람이란건설자동맹'당의 당수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엔지니어, 교사,지방행정관을 거쳐 2003년 테헤한 시장으로 당선됐다. 개혁적인 전임 시장들과 달리 종교적 강경노선을 취한 그는 테헤란의 중,저소득층 지지를 기반으로 2005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9년 재선에 도전해 개혁파 핵심인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총리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당시 선거결과가 조작됐다는 대대적인 국민저항에 부딛혔고, 무력 충돌사태까지 빚어지면서 이란 사회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다. 그 위기에서 아마디네자드를 구해줬던 것이 바로 하메네이였다. 하메네이 입장에서 개혁파보다는 강경보수인 아마디네자드 정권을 지지하는 것이 이란이슬람공화국 체제를 유지하는데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디네자드의 두번째 임기는 2013년에 끝난다. 이란 법상, 3번 연속 대통령에 재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두번 재임한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시 대통령에 나오는 것이 가능하다. 하메네이를 중심으로 한 보수강경파들은 아마네자드가 2012년 3월 총선과 2013년 대선을 통해 자기 세력을 공고히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특히 2013년 퇴임하는 아마디네자드가 자신의 최측근인 에스판디아르 라힘 마샤에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총리 등 내각의 요직을 차지한 다음 4년후 재출마를 노리려 한다는 것이다.

마샤에이 비서실장은 아마디네자드의 오른팔로 불리는 사람이다. 최근 자신의 딸이 아마디네자드 맏아들과 결혼하면서, 사적으로 대통령과 사돈지간이 되기까지 했다. 그는 1984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쿠르디스탄주 정보부에서 일하면서 북서부 도시 코이의 행정관이었던 아마디네자드와 알게 되면서 매우 가까워졌다. 
2005년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국립글로벌화연구센터 대표, 이란문화유산기구 대표, 내무부 부차관을 거쳐 2009년 제1 부총리로 임명됐다가 하메네이 반대에 부딛혀 1주일만에 사임했다. 이후 대통령 비서실장이 된 그는 아마디네자들의 복심을 가장 잘 아는 측근 중의 측근으로 자리잡았다. 정치적으로 보수 민족주의자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다소 개혁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어서 중도보수쯤으로 볼 수있겠다. 
만약 아마디네자드의 계획대로 마샤에이가 차기 이란 대통령이 된다면, 이란판 푸틴-메드베데프 권력구도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반아마디네자드 파는 아마디네자드가 마샤에이 내각에서 요직(총리 등)을 맡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한 다음, 4년 뒤 다시 대통령에 나올 생각을 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메네이는 이란 최고 종교지도자이자,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이다. 이슬람 혁명 이후 신정정치를 표방한 이란에서 최고 종교지도자는 군통수권, 혁명수호위원회 통솔권, 최고 군조직인 혁명수호군 지휘권 등을 갖고 있다. 국민들이 직접 뽑는 대통령이 명목상으로는 이란의 최고지도자로서 국내외에서 활동하지만, 대통령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진짜 권력자는 바로 최고종교지도자이다. 임기는 없으며 종신제이다. 현재 최고종교지도자 하메네이의 전임자는 바로 아야톨라 호메니이였다. 
하메네이는 팔레비 정권하에서 호메니이의 최측근 추종자 중 한 사람으로 박해를 받기도 했으며, 1979년 이슬람 혁명 성공이후 81~89년 대통령을 역임했고, 89년 호메이니가 사망한 이후 최고종교지도자직을 이어받았다.
하메네이는 이슬람 혁명이념에 충실한 강경보수주의자이다. 아마디네자드의 전임자였던 중도파 라프산자니, 개혁파 하타미 전 대통령들과도 갈등이 많았다. 특히 하마티의 개혁정책들을 사사건건 막았던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지난 4월 하메네이와 아마디네자드 간에 정면충돌이 벌어지는 계기가 됐던 사건은 정보장관 헤이다르 모슬레히 사임 문제였다.
모슬레히는 하메네이 측근인사 중 한명으로 잘 알려져있다. 2005년 대통령에 당선된 아마디네자드는 하메네이 최고종교지도자와의 관계 강화를 위해 모슬레히를 자신의 종교담당 보좌관으로 임명하기도 했었다. 이후 그는 하메네이에 의해 정보장관에 임명됐다. 이란에서 내무장관, 정보장관, 국방장관 직은 관례적으로 최고종교지도자가 임명권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지난 4월 아마디네자드는 하메네이의 동의도 받지않고 모슬레히에게 사직서 제출을 명령했고, 결국 그것을 수리해버렸다. 당시 이란 내외신들은 모슬레히가 하메네이에게 대통령 관련 정보를 넘겨준 것에 대해 아마디네자드가 분노했던 것으로 분석했다. 
이러자 하메네이는 아마디네자드에게 모슬레히의 복직을 명령했으며, 이에 대한 항거로 대통령이 일주일쯤 업무를 중단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과 최고종교지도자 간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 국민과 외국에 알려지게 됐다. 아마디네자드는 업무에 다시 복귀한뒤 형식적으로는 최고종교지도자에게 충성을 다짐했지만, 그 이후 정부 관직 통페합 조치를 단행하는 등 하메네이와 끊임없이 충돌을 계속해왔다.  

이란 의회에서 반 아마디네자드의 선봉장은 알리 라리자니 국회의장이다. 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테헤란대에서 서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칸트에 관한 책을 펴내기도 했다. 무사비 전 총리 내각과 라프산자니 정권에서 다양한 관직생활을 했던 그는 2008년 하원의장직에 선출됐다. 과연 그가 이번 청문회에서 하메네이의 뜻대로 아마디네자드를 밀어부쳐 탄핵까지 이뤄낼 것인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