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코드명 마리아.. 교황청을 뒤흔든 교황문서유출사건

bluefox61 2012. 6. 1. 19:52

85세 교황이 울었다. 그리고 화를 내면서 "진실이 곧 밝혀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탈리아 현지언론 라스탐파 등은 최근 바티칸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24일 에토레 고티 테데시 바티칸은행장 해임 소식을 들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내친구 에토레"라고 탄식하면서 울었다고 보도했다. 



로마가톨릭의 총본산 바티칸을 강타하고 있는 이른바 '바티리크스(바티칸과 위키리크스의 합성어)'스캔들이 수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전문가들은 바티칸 문서유출 등 일련의 사건 뒤에는 차기 교황직을 둘러싼 추기경들 간의 권력추쟁이 자리잡고 있다고 일제히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왜, 어떤 목적으로 교황문서유출이란 사상초유의 일을 벌였는지 정확한 내막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언론에 유출된 교황문서들


사건이 처음 벌어진 것은 지난 1월이었다. 방송언론인인 지안루이지 누치(42)가 교황청 내부 인사로부터 받았다며 교황의 개인문서, 편지 등을 공개했다. 문서와 편지에는 교황청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비리를 베네딕토16세에게 보고한 것도 포함돼있었다. 

대표적인 것인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현 주미바티칸대사)가 교황의 오른팔인 타르치시오 베르토네(78)추기경(현 국무원장) 측근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이들이 교황청 이름으로 맺은 각종 계약에서 이득을 챙기고 있다고 지적한 편지였다.  

이탈리아인 추기경이 중국여행 중 교황이 1년내 사망하고 안젤로 스콜라 추기경이 새 교황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는 정보를 보고한 편지도 포함돼있었다. 누치는 지난 18일 출간한 저서 '성하(교황을 높히 칭하는 용어)'에서 다시한번 직격탄을 날렸다.그는  이 책에서 새로운 교황 문서들을 인용해 교황청 내부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져 베네딕토 16세의 리더십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고 폭로했다.

 


<테데시 바티칸은행장>


 

지난 24일에는 교황과 베르토네 국무원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테데시 바티칸은행장이 이사회에서 전격 해임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09년 스페인 산탄데르은행에서 바티칸은행으로 스카웃됐던 테데시는 한때 교황과 함께 책을 집필했을 정도로 신앙심이 매우 깊은 인물로 알려져있다. 또한 바티칸은행의 고질적인 폐쇄성을 깨뜨리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투명성을 확보하기위해 애써왔다.

이사회는 테데시를 해임한 이유에 대해 "기본 직무수행에 실패했기때문"으로 설명한 것 이외에 일절 함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테데시가 바티칸은행의 개혁을 추진해온 것에 대해 이사회가 제동을 건 것으로 보고 있다.문서유출 사건과 테데시 은행장이 연루됐다는 설, 베르토네 추기경이 교황의 신임을 받고 있는 테데시 은행장을 질투해 제거했다는 설 등도 있다.

 


<교황 집사 가브리엘레(앞쪽)가 베네딕토16세 전용차에 타 수행하는 모습>

                                      

교황 개인집사 체포


하루뒤인 25일, 교황청 경찰은 교황의 개인집사인 파올로 가브리엘레(46)를 문서 유출 혐의로 전격체포했다. 가브리엘레는 교황이 잠에서 깨어나 잠자리에 들때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수발하는 일을 담당해왔다.과묵하고 신앙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비올때 교황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옷입는 것을 도와주기도 한다. 노령의 교황이 자동차를 탈 때 부축하는 것 역시 그의 임무이다.

경찰조사 결과 그의 집에서는 교황 서재에서 가지고 나온 것이 분명한 문서, 편지 다수가 발견됐다. 교황 문서의 언론유출도 처음이지만, 교황 개인집사가 경찰에 체포된 것도 유례없는 일이다. 현지언론들은 혐의가 입증될 경우, 가브리엘레가 최대 30년형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교황청 안팎에서 가브리엘레가 단독으로 교황의 문서를 들고 나와 언론에 넘겼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진한 그가 모종의 음모에 걸려들었거나, 교황과 측근을 공격하려는 어떤 세력에 이용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언론인 누치는 지난 30일 AP통신 등과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문서를 넘긴 정보원들에 대해 '일단의 사람들'또는 '십여명'으로 표현했다. 정보원 전체를 칭하는 호칭은 '마리아'이다.
 

이번에 유출된 교황문서에 담긴 내용 중 완전히 새롭고 충격적인 것은 거의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래전부터 교황청 내에 알려져있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교황 개인문서를 누군가 의도적으로  빼돌린 행위 자체이다. 교황의 권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모종의 목적없이는 저지를수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베르토네 교황청 국무원장>

 


공격목표는 국무원장


문서유출을 저지른 세력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일단 베르토네 국무원장으로 보인다.  비판세력들은 보수적인 베르토네 국무원장이 노령의 교황을 대신해 교황청 권력을 독점하고, 개혁시도를 방해하며 온갖 부패를 저질러왔다고 주장한다. 유출된 문서들 중 다수가 베르토네 국무원장 및 측근과 관련된 것이다.

국무원장은 교황청의 행정조직인 '쿠리아'를 이끄는 인물로, 세속정부의 총리에 해당한다. 2006년 베데딕토16세가 베르토네를 국무원장에 임명했을 당시에도 강력히 반발하는 추기경들이 많았으며, 심지어 전임자인 안젤로 소다노 국무원장은 수개월동안 사무실을 비워주지 않고 버티는 것으로 베르토네에 대한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저지른 세력이 베르토네의 도덕성에 타격을 줘 그를 끌어내림으로서, 차기 교황선출을 위해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고있다. 라레푸블리카지는 문서유출세력이 베르토네를 제거한 다음 국무원장직을 차지하고, 그 다음차례로 교황 선출기구인 콘크라베를 장악함으로서 자기 파벌의 교황을 탄생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듯하다고 보도했다. 즉, 차기 교황자리를 둘러싼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써부터 시작됐다는 이야기이다.


추락한 교황 리더십


이번 사건으로 로마가톨릭의 권위추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베네딕토 16세 역시 교황청 조직을 개혁하는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장악력도 상실했다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베네딕토 16세가 2005년 교황에 즉위하면서 약속했던 쿠리아 개혁은 이번 사건을 통해 실패한 것으로 드러난 셈이 됐다. 

한 소식통은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 베네딕토16세는 기본적으로 학자여서 행정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세력다툼을 조정할 힘과 영향력이 없어졌고, 결과적으로 교황청 안에서 고립돼있다시피하다는 것. 베네딕토16세는 지난 30일 강론에서 "최근 쿠리아 및 나의 조력자들이 관련된 사건으로 슬픔에 차있다"면서  "언론의 과장보도가 바티칸을 그릇된 이미지로 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바티칸 경찰은 가브리엘레를 비롯한 수십명을 대상으로 문서유출사건을 조사중이다. 교황청은 수사대상에 추기경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로마카톨릭의 상징이면서도 숱한 음모와 스캔들에 휘말려왔던 바티칸의 2000년 역사에서 진실은 때론 왜곡되거나 실종됐던 것이 사실이다. 이탈리아 교회사가 비토리오 메소니는 지난 26일 라스탐파와 인터뷰에서 "쿠리아는 항상 독사들의 소굴이었다"고 말했다. 



성추문, 돈세탁, 권력암투와 나치부역 논란까지. 지난 몇년간 로마 교황청과 가톨릭계의 잇딴 스캔들은 가톨릭계뿐 아니라 종교전체에 대한 신뢰를 뿌리채 흔들었다. 가톨릭의 권위를 추락시킨 스캔들은 대부분 새로 생긴 문제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수면아래 감춰졌던 '은폐된 진실들'로 결국 사회와 시대 정신의 변화속에서 가톨릭의 구체제와 비밀주의가 더이상 성역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톨릭의 최대 스캔들이라면 연일 터져나오는 성추문이다. 2002년 미국 보스턴 대교구에서 시작돼 전역으로 확산된 미 가톨릭 사제 성추문이 충격을 안긴데 이어 2009년 11월 아일랜드 정부조사단의 보고서는 '폭로 도미노'를 일으켰다. 당시 아일랜드 정부는 보고서를 통해 1975년부터 2004년까지 가톨릭 성직자에 의한 성적학대 피해사례 320건을 공개했다. 

정부의 공식 조사라는 점과 300건이 넘는 피해 규모는 순식간에 세계적 공분을 일으켰고 전세계 곳곳의 동시다발적 폭로로 이어졌다.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 브라질, 호주, 필리핀, 인도 등의 가톨릭 성추문에 이어 최근에는 '그리스도의 군단'수도회의 대변인인 토머스 윌리엄스 신부가 아들을 뒀다는 사실을 인정해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교황청이 당국의 성추문 조사를 방해했다는 비판이 나왔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996년 교황청 추기경으로 재임당시 성추문 사건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성직자에 의한 성추행 피해자를 지원하는 인권단체 SNAP는 지난해 성직자들이 저지른 성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 베네딕토 16세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2008년에는 독일 가톨릭 교회가 나치 정권에 협력했고 동유럽 출신자 6000명을 강제 노역을 시킨 사실이 드러나 비판을 받았고 2010년에는 독일 바이에른 아우스부르크의 한 신부가 고아원 운영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고발되는 등 가톨릭 교회의 방만한 재정 운영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바티칸 은행은 지난 2010년 유럽 금융당국으로부터 돈세탁관련 정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성, 돈이라는 신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 세속적 욕망에 연루된 이들 스캔들에 이어 지난 2월에는 베네딕토 16세의 암살 음모설 관련 내부문서가 누출되면서 교황청내 권력 다툼이 대중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