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에베레스트에 무슨일이 ...상업화에 신음하는 에베레스트

bluefox61 2012. 5. 25. 19:53

'지구의 지붕' 에베레스트( 티베트어 초모랑마, 네팔어 사가르마타)는 경이로운 자연의 상징이자, 수많은 산악인들의 생사가 엇갈리는 준엄한 현장이다. 

 

그곳에서 지난 19일 한국 산악인 송원빈(24)씨 등 4명이 목숨을 잃고 3명이 실종됐다. 악명높은 '1996년 5월 11일 참사'이후 하룻동안 최다 사망기록이다. 송씨는 14시간 사투끝에 19일 오전 10시쯤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밟는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산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산악계 안팎에서는 96년 참사 이후 에베레스트 등반환경이 전혀 개선되지 못했다는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에베레스트 등반의 지나친 대중화와 상업화를 개탄하는 지적이 제기된지 20년 가까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산악인들은 에베레스트가 극한 스포츠를 즐기는 '부자들의 테마파트'가 됐다고  탄식하면서, 이번과 같은 사고가 앞으로 언제든 재발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난 19일, 과연 에베레스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티베트와 네팔인이 '우주의 어머니'이자 '하늘의 여신'으로 숭배하는 에베레스트가 상업화와 기후변화에 신음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베레스트의 교통난


많은 산악인들은 19일 대규모 참사의 원인으로 교통난(traffic jam)을 지적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등반로에 몰리는 바람에 하산때 정체현상이 빚어졌고,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면서 산소가 부족해진데다가 고소증세를 겪는 사람이 많아져 피해가 컸다는 것이다. AP통신,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19일은 네팔 당국이 허용하는 올해 봄 등반시즌(통상 3월초부터 5말까지) 중 기상상황이 처음으로 이른바 '클리어 컨디션(clear condition)'인 주말이었다. 19일,20일 이틀동안 무려 208명이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에베레스트 산에 올랐다.



<힐러리스텝에서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는 등반자들>

 

 

저명한 산악인인 앨런 아네트는 23일 외신들과 인터뷰에서 "등반자가 몰리면 정상 근처의 병목지점(힐러리스텝)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순서를 기다리게 되는데, 대기중 산소사용이 늘어나 추워지면 잘못된 결정을 하기 쉽다"고 말했다. 미국언론인 존 크라카우어는 1996년 참사를 기록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희박한 공기속으로(Into Thin Air)'에서 실제 에베레스트에서 겪은 '교통난'을 생생히 묘사했다. 


"산정상을 떠나 골짜기로부터 2000m 이상치솟아오른 까마득한 낭떠러지 위를 15분간 조심조심 걷다보니 어느새 저 악명높은 힐러리 스텝에 이르렀다. 나는 고정밧줄에 고리를 걸고 그 가파른 벼랑을 내려오려 하다가 놀라운 광경과 맞닥뜨렸다. 10m 아래에 있는 힐러리 스텝 밑바닥에서 열명도 넘는 사람들이 죽 늘어서서 자기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사람은 이미 내가 타고 내려가려 한 밧줄을 붙잡고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어쩔수없이 고리를 풀고 옆으로 비켜섰다."  


19일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년에 걸친 준비와 엄청난 비용을 들여 에베레스트를 찾은 등반인들이 천재일우처럼 찾아온 쾌청한 기상조건을 놓칠수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려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네팔이나 티베트쪽 관할 당국인 중국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한 산악인은 국내언론과 인터뷰에서 "당국이 등정때 한차례에 서너팀만 오를수있도록 통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업화의 그늘


등반자 숫자규제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엄청난 재정수입을 꼽고 있다. 아네트에 따르면, 에베레스트 등반자가 네팔 또는 중국 당국에 지불해야하는 등반료는 1인 평균 약 2만5000달러. 등반대 규모에 따라 등반료는 달라진다. 이뿐만 아니라 셰르파(현지등반 안내인), 산소탱크 사용료, 각종 기자재 비용 등을 합치면 전체 원정비용은 10만달러(약1억2000만원) 안팎으로 급등하게 된다. 재정이 넉넉치 않은 네팔과 중국 정부로서는 등반가들이 현지에서 떨어뜨리는 돈이 엄청난 수입이 된다.
 

거액의 비용에도 불구하고 에베레스트 등반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극한 스포츠를 즐기는 부호층이 늘어난데다가 , 등반장비의 발전으로  전문산악인이 아니더라도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는 확률이 매우 높아졌기때문이다. 1953년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네팔 산악인 텐징 노르가이가 세계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이래 3142명이 그 뒤를 이었다. 

그 중에는 13세 소년도, 76세 할아버지도 있었다. 송씨가 목숨을 잃은 19일에는 73세 일본 할머니가 에베레스트 최고령 여성등반 기록을 작성했다. 에베레스트 등반이 호황으로 이루면서, 현지에는 미숙한 아마추어 등반가들을 정상에 올려주는 전문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성업을 이루고 있다.

 

무너지는 등반윤리


전문 산악인들은 에베레스트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숭고한 등정 목표였던 시대가 사라졌다고 개탄한다. 2006년에는 미국 등반가 데이비드 샤프가 정상 부근에서 정신을 잃고 얼어죽어가는 모습을 수십명의 등반가들이 지척에서 지켜보고서도 그대로 지나친 사실이 알려져 전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심지어 등반경력을 속인 자격미달의 셰르파가 등반도중  건강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고객을 버리고, 저만 살겠다고 하산해버린 사건도 있다. 미국 언론인 마이클 코더스는 2008년 펴낸 저서 '에베레스트의 진실'( High Crime)에서 샤프와 닐스 안테사나 사망사건을 상세히 파헤쳐 에베레스트 등반의 추악한 이면을 고발했다. 베이스캠프에서 다른 등반팀의 산소통을 훔치는 사건도 빈번하게 벌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제 한몸 챙기기도 힘든 고된 등반에서 남을 돕는 일은 자기 자신은 물론 팀원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이 될 수있다. 하지만 지난 2010년 캐나다 등반가 미건 맥그래스는 지쳐 쓰러진 네팔인을 발견하고, 자신의 등반을 중단한채 그의 생명을 구해내 이듬해 힐러리재단의 인권상을 수상했다.
 

<숫자로 본 에베레스트산> 


8848m 에베레스트산 높이 

1953년 5월 29일 노르웨이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네팔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 세계최초 에베레스트 등정 공인기록 

1980년 8월 20일 독일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 세계최초 단독등반 성공 

3142명 힐러리 이후 등정 성공 등반인(2010년기준) 

228명 힐러리 이후 등반 중 사망자 

8명 하루 최다사망기록(1996년 5월11일) 

9명 2012년 사망자수 

16명 한해 최다사망기록(1996년) 

76세 최고령 등정기록(2008년 5월 25일 네팔 산악인 빈 바하두르 셰르칸) 

13세 최연소 등정기록(2010년 5월 22일 미국인 조던 로메로) 

2만5000달러 평균 등반허가료(네팔) 

3국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국가수 (네팔, 중국령 티베트, 인도)


에드먼드 힐러리는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인 지난 2003년 한 파티에서 오늘날 에베레스트의 현실을 개탄한 적이있다.


" 베이스캠프에는 1000여명이 북적대고 500조의 텐트가 설치돼있다. 사람들은 그저 꼭대기에 오르고 싶어한다. 곤경에 빠진 사람을 봐도 아는체하지 않는다.  내게 에베레스트의 미래는 밝아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베레스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동경의 대상이다.

수백만년동안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 서있는 '우주의 어머니'를 병들게 만든 것은 인간의 탐욕이다.

19일 그 산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이번 주말 이틀동안에도 최소 200여명이 등반에 나설 예정이라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에베레스트가 몸살을 앓는 또 다른 이유는 쓰레기이다.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경이 에베레스트 첫 등정에 성공한 후 이곳에 버려진 쓰레기량은 최소한 50여t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에베레스트 쓰레기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네팔정부가 등반객에게 쓰레기를 갖고 하산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엄청난 량의 로프, 텐트, 배낭, 산소통, 생활용품 등이 버려지고 있다. 특히 베이스캠프 정도라면 쓰레기와 인분을 모아 놨다가 하산할 때 챙겨올 수 있지만 더 높이 올라가면 상황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등정대원들이 쓰레기 수거까지 신경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지구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얼음 아래 뭍혀있던 오래된 쓰레기들도 또다시 등장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환경운동가들은 최근 얼음이 녹으면서 1950년대 힐러리경이 활동하던 시대의 쓰레기들도 썩지 않은 상태 그대로 에베레스트 곳곳에 뒹굴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에 의미있는 캠페인과 활동도 벌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파라는 세르파가 중심이 되어 실시하고 있는 '에코 에베레스트'이다. 에베레스트 산자락에서 태어나 1989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처음 밟은 아파는 지금까지 스물두 차례 에베레스트를 올라 '슈퍼 세르파'로 불리는 인물이다.
산에 오를 때마다 갈수록 늘어나는 쓰레기를 목격한 그는 2008년부터 전문 세르파, 네팔정부, 그리고 민간 단체 '아시아 트레킹'등과 함께 에베레스트 청소 캠페인인 '에코 에베레스트'를 이끌어왔다. 이는 태양광 전등 등 가능한 친 환경적 방법으로 산에 오른 뒤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이다. 이들은 에베레스트를 오른 일반 등정대원들에게 쓰레기를 갖고 하산해줄 것을 부탁하는 방법 등을 통해 지금까지 약 13t의 쓰레기를 치웠다. 이들은 지난 4월에도 5회째를 맞는 '에코 에베레스트' 캠페인을 벌였다.
이들은 올해에도 약 5t가량의 쓰레기를 수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에는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쓰레기를 들고 하산하는 사람들에게 쓰레기 1㎏당 1.40달러를 지불하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 2000년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각국 원정대들이 연이어 쓰레기 치우기 행사를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