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셰일가스) 수출로 러시아산 에너지에 종속된 유럽을 해방시켜 우크라이나 사태의 재발을 근본적으로 막자는 목소리가 미 정계 안팎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무기로 지난 10여년동안 우크라이나는 물론 동유럽 경제와 정치를 쥐고 흔들어왔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손발을 묶을 수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미국산 셰일가스의 유럽 수출이라는 것이다. 러시아 경제에서 에너지 수출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엄청난 만큼, 미국산 셰일가스의 유럽 수출은 푸틴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은 4일 "우리는 푸틴이 지정학적 목적에서 에너지를 무기화하는 것을 더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금 당장 할 수 있으며, 해야만 하는 결정은 미국산 천연가스 수출의 신속한 허용"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막대한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많은 동맹국들이 에너지를 원하고 있는 만큼 천연가스 수출이야말로 미국이 동맹국들과 연대해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낼 수있는 명백한 방안이자 미국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해낼 수있는 길이라는 게 베이너 의장의 주장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베이너 의장뿐만 아니라 다수의 공화당 의원들과 에너지업계가 미국산 천연가스의 신속한 수출허용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고 5일 보도했다.
미국은 셰일가스 개발 붐 덕분에 원유와 천연가스 부문에서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최대 생산국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 에너지정보청(EIA)와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같은 해 7월 기준 미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은 하루 2200만 배럴을 기록했다. 이는 러시아의 하루 생산량 2180만 배럴을 넘어서는 규모이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까지 천연가스 수출국이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오는 2015년쯤 천연가스의 해외수출을 허용할 계획이다. 이 계획을 대폭 앞당겨 조기 시행하자는 것이 베이너 의장 등 수출지지론자의 주장이다.
러시아는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의 노르트스트림, 블루스트림, 야말-유럽 파이프라인 등 3대 파이프라인을 통해 전 유럽에 원유와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사우스스트림 파이프라인 공사도 진행 중이다. 4개의 핵심 파이프라인에서 갈라져 나간 크고 작은 파이프라인들이 전 유럽에 마치 핏줄처럼 깔려 있다.
유럽에서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는 바로 우크라이나다. 연간 에너지 소비량의 약 60%를 러시아 산 원유와 천연가스로 충당한다. 이러다보니 두 나라 간에 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러시아는 파이프라인을 잠궈 우크라이나를 압박했다. 푸틴은 2004년, 2006년, 2009년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우크라이나를 응징했다. 2009년 당시 우크라이나 총리였던 율리아 티모셴코는 울며 겨자먹기로 러시아와 비싼 천연가스 공급계약을 맺었고, 이것이 권력남용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티모셴코의 정계 퇴진 및 교도소행을 초래했던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가 추진 중인 극동지역 파이프라인 프로젝트( *자료=가스프롬)
< 자료=로이터 . 2012년 기준>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서유럽도 러시아산 에너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독일이다. 가스프롬의 노르트스트림의 종착지 국가인 독일은 수입 천연가스의 약 40%, 원유의 약 35%를 러시아로부터 받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전체적으로는 천연가스의 약 25%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한다.
러시아의 가스프롬은 지난해 유럽 수출로 총 매출 490억 달러(약 52조5084억 원), 순수익 390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러시아 에너지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예산의 약 40%를 에너지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연구소는 2015년 이후 러시아의 원유 수출이 25∼30% 감소하고 이 때문에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이 1000억 달러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천연가스를 유럽에 수출할 경우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유럽 각국 입장에서는 수입원이 다변화되면 더 이상 러시아에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와 폴란드가 엑손, 셰브론 등 다국적 에너지 회사들과 손잡고 자국내 셰일가스 생산을 본격화할 경우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 위력은 갈수록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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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5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대화를 나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무력 점거 이후 양국의 외교 책임자가 대면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라브로프 장관은 파리에 와있던 안드레이 데쉬차 우크라이나 과도 정부 외교장관과 직접 만나 대화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해 험난한 협상 과정을 예고했다.
로이터,AFP통신 등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과 케리 장관은 5일 파리에서 열린 레바논 국제지원그룹 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논의했다. 양국 장관 면담 후 라브로프 장관은 "러시아는 서방국과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지난 2월 21일 체결한 협정을 이행하도록 돕는데 합의했다"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의 중재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과 야권 지도자들이 합의한 협정은 대통령 권한 축소를 골자로 한 개헌, 거국 내각 구성, 조기 대선 실시 등을 담고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회담 후 데쉬차 장관을 만났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사람이 누구냐"며,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를 철저히 무시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를 불법정권으로 주장하고 있다. 미 국무부 측은 라브로프 장관의 '합의'발언이 나온 후, "우크라이나 정부의 직접적인 참여없이는 어떤 합의도 없을 것"이라며 러시아측의 주장을 부인했다.
이같은 혼선에도 불구하고 케리 장관은 5일 언론인터뷰에서 "협상이 시작됐으며, 매우 건설적이었다"는 말로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어려운 합의과정이 될 것"이라면서도 "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낫다"고 말했다.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교장관도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케리와 라브로프는 6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리비아 국제회의에 참석해 대화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유럽연합(EU)은 6일 긴급 정상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제재 방안에 대해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EU 정상들은 이번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차관과 무상공여 110억 유로(약 16조 5000억원) 지원을 공식화할 것을 보인다. EU 외교장관들은 앞서 지난 3일 러시아가 크림 반도에서 즉각 병력을 철수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에 불응하면 무기금수 등의 제재를 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사무총장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이제부터 러시아와 실무 차원의 민간 및 군사적 만남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편 율리야 티모셴코 전 우크라이나 총리는 5일 대선 출마를 공식 표명하면서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군에 총을 겨누고 있는 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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