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고난의 땅, 크림 반도

bluefox61 2014. 3. 3. 11:56

우크라이나 동남부 흑해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크림 반도는 수백년 간 동·서 강대국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그리스, 훈족, 몽골 족  등의 침략을 받은데 이어 러시아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853년에는 서쪽으로 세력 확장을 노린 러시아 제국과 영국, 프랑스,오스만 제국 등이  맞서 싸우면서 약 3년동안  최소 50만 명 이상 사망했다. 영국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이 전쟁에 간호병으로 참전해 영웅적인 활약을 펼쳤던 것은 잘 알려진 일화이다.

 

<크림 전쟁 당시 세바스토폴 전투의 가상화>


크림 반도는 우크라이나 내 친 러시아 세력의 중심지로 불릴 정도로, 러시아와는 뗄레야 뗄 수없는 관계이다. 1954년 니키타 흐루시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결정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편입된 크림 반도는 1992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분리독립하면서 자치공화국이 됐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자치공화국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크림 자치 의회가 협의해 선출했다.
 

크림 반도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가 필요한 러시아에게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크림 반도는 흑해에 자리잡아 일년 내내 기후가 온화하다. 게다가 흑해 서남쪽의  터키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면 지중해로 나갈 수있고, 지중해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면 중동 아라비아해까지 진출할 수있다. 따라서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러시아 입장에서 크림 반도는 전략적으로 필수적이다. 


현재 크림반도 남쪽의 세바스토폴에는 러시아 흑해함대가 주둔하고 있다. 축출된 친러계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2010년 러시아와 임대 기간을 2042년까지 연장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할인된 가격을 제공한다는 조항도 담겨 있다. 


다만 타국 영토에 위치한 임차지이기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당국의 허가없이는 기지 외부로 군사설비나 군함을 이동시킬 수 없다. 러시아가 최근 세바스토폴 흑해 함대 병력 일부를 기지 밖으로 이동시켜 우크라이나 군기지 장악에 나선 것을 두고, 우크라이나 과도정부가 협정 위반과 침략행위로 비난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크림 반도 주요 군기지에서 러시아 군과 우크라이나 군이 대치하고 있다. 교전이 발생했다는 보도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지만, 총알이 한 방이라도 발사될 경우 러시아와 서방 간의 전쟁이 일어나는 일촉즉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은 러시아 군이 크림자치공화국의 수도 심페로폴 외곽 군기지, 러시아 흑해함대 주둔지인 세바스토폴 인근 페레발노예 군기지, 반도 동쪽 페오도시아 군기지를 포위하고 우크라이나 군의 항복과 무장해제를 요구하며대치하고 있다고 2일 보도했다. 페레발노예 군기지 경우 러시아 군인 약 150명과 수십여대의 군차량이 진입로를 막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군 역시 탱크를 동원해 기지 안쪽 입구를 방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규모 해군기지가 있는 페오도시아에서도 우크라이나 군이 러시아 군의 항복 요구를 거부한 채 버티고 있다. 페레발노예 인근의 벨베크에서는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군의 무기고를 장악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아직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심페로폴 시내에서도 2일 밤  큰 폭발음이 들렸지만, 폭발이 발생한 정확한 위치는 미확인 상태이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내 크림 미디어센터의 블라디슬라프 셀레즈뇨프는 2일 CNN과 인터뷰에서 " 러시아 군이 크림 곳곳에서 우크라이나 군 기지 집입로를 차단하고 포위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아직 교전 보고는 없다"고 말했다. 셈페로폴 외곽 공군기지 등은 이미 러시아 군이 장악한 상태이다. .
 

우크라이나 정부는 2일 오전 8시부터 전국에 예비군 소집령을 내리고 전군에 전투태세 돌입을 명령했다. 경찰 산하 내무군도 강화 근무태세 체제에 들어갔다. 예비군 소집령에 따라 40세 이하 남성은 지역별 군부대에 모여야 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은 러시아와 비교자체가 의미없을 정도로 열세이다.
 

러시아 경우 정규군만 84만 5000명이고, 지난 2월 26일 서부 군관구 전부대와 중부 군관구 일부 부대에 내린 전투태세 점검훈련에 동원한 병력이 약 15만명에 이른다. 게다가 이미 크림 반도 남쪽 세바스토폴 흑해함대 기지에는 보병 여단, 미사일 여단, 특수부대 등에 소속된 1만 5000명의 병력과 잠수함, 구축함, 순양함, 호위함 등 수십 척이 배치돼있다. 


반면 우크라이나 정규군은 12만9000명에 불과하다. 특수부대, 탱크 여단, 전투기 부대 등이 있지만 러시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규모이고, 경제난으로 인해 국방예산이 축소되면서 무기 업그레이드도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다. 1척 밖에 없는 잠수함은 부품 교체가 이뤄지지않아 작동 자체가 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러시아계 군인들의 군 이탈도 심각한 상태이다. 인테르팍스통신은 크림 반도 주둔 우크라이나군 부대원 상당수가 크림 자치공화국 정부 통제하로 넘어왔다고 보도했다.  여러 부대 소속 군인들이 스스로 우크라이나 군복을 벗고 부대를 이탈해 자치정부 산하 자경단원으로 변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크림 내 우크라이나 해군사령부의 데니스 베레조프스키 해군사령관까지 2일 러시아군에 투항했다. 우크라이나 국가안보위원회는 베레조프스키 사령관은 해임하고 국가반역죄로 형사소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