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미 대법원, '소수계 우대정책'금지는 '합헌' 판결

bluefox61 2014. 4. 23. 11:13

미국에서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의 결과물로 채택된 대학 입학전형의 소수계 우대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 반세기만에 사실상 폐지됐다. 미국내 흑인과 히스패닉 등 마이너리티 사회를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예상되고 있어 상당한 파장을 불가피할 전망이다.
 

"각 주는 유권자 투표 등을 통해 정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22일 미 대법원은 지난 2006년 미시간 주가 주민투표를 통해 공립대에서 어퍼머티브 액션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주 헌법을 개정한 결정을 하급심을 뒤집고 찬성 6 대 반대 2로 합헌 판결했다.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다수 의견서에서 "이번 사건은 인종 우대 정책과 관련한 논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각 주는 유권자 투표 등을 통해 정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찬성표는 보수성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앤서니 케네디, 새뮤얼 앨리토, 클래런스 토머스, 앤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이 던졌다. 진보 진영에서는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이 동참했다. 진보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행사했다. 하급심인 제6연방순회항소법원은 지난 2012년 11월 미시간주 유권자 58%의 찬성으로 이뤄진 주헌법 개정을 평등권 위반 및 인종 차별에 해당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미시간주의 공립대는 입학자 전형에서 소수계 우대 정책을 적용하지 않아도 민권법에 저촉되지 않게 됐다. 현재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워싱턴, 애리조나, 네브래스카, 뉴햄프셔, 오클라호마주 등 7개주도 어퍼머티브 액션을 적용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수의 주가 뒤따를 것으로 보여 사실상 미국의 대학입학 전형에서 소수계 우대정책은 점점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 한인 사회에서는 교포 학생들이 백인 학생들과 성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만큼 오히려 어퍼머티브 액션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입장에서 이번 판결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소수계 대법관' 소토마요르의 비판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이날 58페이지에 달하는 소수의견문을 낭독하면서,  "대법원의 다수 대법관들은 차별의 미국 역사에서 소수 사회를 다르게 대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라고 격한 어조로 말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이번 결정으로 소수 인종에 대한 평등권 보호 정신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며 "법관들은 우리 사회에 엄존하는 인종 불평등을 뒷짐지고 앉아서 사라지기를 기대하는 대신에 맞서 싸워니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지난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명으로 히스패닉계 최초로 대법원에 입성했다. 프린스턴대와 예일대 로스쿨 출신인 그는 지난 2013년에 "1970년대에 어퍼머티브 액션은 내 인생의 문을 열어 주었다"는 글을 쓴적이 있다.

 

'어퍼머티브 액션' 역차별 논란을 본격적으로 불러일으킨 주인공인 애비게일 피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사실 '어퍼머티브 액션'의 합헌 여부 자체에 관한 것은 아니다. 미시간 주는 지난 2006년 공립교육에서 "인종·성별·피부색·출신민족 및 국가를 근거로 차별하거나 우대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으로 주 헌법을 수정한 '프로포지션 2'를 주민발의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이후 민권운동가들은 미시간 주 수정헌법이 연방 수정헌법 제14조의 평등보호 조항을 어긴 것인지 가려 달라고 대법원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대법원이 이번에 "유권자가 투표로 의결한 것을 법관이 바꿀 권리가 없다"며 합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즉, 법원의 법리판단보다 국민의 뜻에 더 무게를 둔 셈이다.   


이날 결정은 미시간주 헌법에 한정됐으나 캘리포니아·플로리다·워싱턴·애리조나·네브래스카·오클라호마·뉴햄프셔 등에서도 주헌법 개정을 통해 어퍼머티브 액션을 금지했고,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대법원 결정의 영향력은 급격히 확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 챕터가 됐던 애비게일 피셔 사건


대법원은 지난해 6월에는 텍사스대에 지원했던 백인여성  애비게일 피셔가 '어퍼머티브 액션'때문에 불합격했다며 제기한 소송에 대해  7대 1로 '합헌성 재심리' 판결을 내려 사건을 항소법원으로 돌려 보냈다.

이른바 '피셔 소송사건'은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에 한 단원으로 다뤄질 만큼 유명하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미 대학들은 소수계 우대정책을 유지하되 백인들이 역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적용기준을 엄격하게 수행하게 됐다. 대법원은 투표권리법에 대해서도 5 대 4로 소수인종에게 불리한 일부 위헌 판결을 내린 바있다.

 

이같은 일련의 판결 때문에 대법원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시각이 있지만, 미국 사회 변화를 반영한 결과란 분석도 적지 않다.  미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대통령이 탄생되고 신생아 인구에서 흑인, 라틴, 아시아계가 절반을 넘기는 상황이 되면서 '어퍼머티브 액션'의 역차별 및 회의론이 크게 확산됐기 때문이다. 


미 통계국에 따르면 앞으로 5년 내에 18세 이하 연령층에서 소수 인종이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있다.  따라서 이같은 사회적 공감대가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은 미국의 소수계 우대정책를 가르키는 용어다. 줄여서 AA로 불리며, 단어 자체로는 '긍정적 조치'란 의미를 갖고 있다.

인권운동의 불길이 치솟던 지난 1961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이 '동등고용기회위원회'를 설립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처음 도입됐다. 3년 뒤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됐으며,이 법안의 정신에 따라 시행되는 정책과 조치들을 '어퍼머티브 액션'으로 부르게 됐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학입학, 취업, 진급, 또는 연방정부 사업에서 소수인종(특히 흑인과 히스패닉계) 및 여성 등 일종의 '사회적 약자'에게 일정한 쿼터를 인정함으로써 기회를 주는 조치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비율은 주별로 약간씩 다르다. 일부 주에서는 주정부 차원 사업의 경우 소수인종및 여성소유 소기업에 최소 5%의 참여 쿼터를 보장하고 있기도 하다.

또 주 정부 차원에서 또 가정형편이 어려운 소수 인종과 백인 학생들에게 졸업 후 최소 3년간 주를 떠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주정부가 수업료를 보조해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곳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