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들/여행

네덜란드&벨기에에 가다-1. 고흐&국립박물관&마우리츠하위스...

bluefox61 2023. 4. 1. 19:10

 

2023년 초봄, 오랫동안 계획했던 네덜란드와 벨기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보름동안 두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풍경과 고색창연한 문화유적들은 물론이고  교과서와 화집에서만 보던 수많은 거장 화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있었습니다. 고흐와 렘브란트, 루벤스와 안토니 반다이크, 얀 판 에이크, 브뤼헐 부자, 히에로니무스 보슈 등등.... 제가 격하게 사랑하는 페르메이르 작품들은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 특별전 티겟이 모두 매진되는 바람에 보지 못했고, 르네 마그리트 작품들은 브뤼셀 국립미술관의 해당 전시관이 업그레이드를 위해 폐쇄되는 바람에 만나지 못해 아쉽기 짝이 없었지요. 하지만, 두 화가 말고도 만나야 할 화가들은 너무너무 많아서 발길이 바빴네요.

 

암스테르담을 찾는 전 세계 관광객 대부분이 첫 일정을 고흐 미술관에서 시작할 듯 한데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하기전 박물관 카드를 온라인으로 구매했고, 여행 내내 이 카드를 정말 알차게 이용했습니다. 대부분의 미술관을 무료로 이용하는게 가능하고, 안네 프랑크 기념관 등 몇몇은 추가 요금을 내기도 했습니다. 

마침 방문기간동안 고흐 미술관 50주년 기념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반 고흐의 비교적 젊은 시절 모습을 볼수 있는 자화상입니다. 

폴 고갱이  그린 고흐 초상화 입니다. 아를르에 있는 노란집에서 함께 지내던 시절에 그린 작품이지요. 바로 아래의 집입니다.

고흐의 너무 유명한 해바라기 그림.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고흐의 동생이자 영원한 후원자였던 테오 가족이 세계 미술사에 남긴 큰 기여였습니다. 사실 고흐 형제에 대해서는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림을 직접 본다는 것 이외에 새로울 것은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50주년 기념전을 통해 테오의 아내 요하나와 두 사람의 아들 빈센트가 반 고흐의 작품이 가진 의미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려고 노력해왔는가를 비로소 알게 됐네요. 

아래 사진에서  요하나(가운데 여성) 의 모습을 볼 수있습니다. 요하나는 시아주버니 빈센트가 죽은 지 수개월 뒤 남편 테오가 사망하면서 어린 아들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가됐지요. 예술에 대해 공부한 적은 없었던 그녀였지만 시아주버니가 남긴 수백점의 그림들이 가진 가치를 알아봤다고 해요.  그녀는 빈센트의 그림들을 전시하고, 서한들을 책으로 묶어 펴내는 등 빈센트 반고흐란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그녀의 아들 빈센트는 델프트 공대를 졸업한 후 엔지니어로 활동했지만, 인생의 후반기에는 반 고흐 재단을 설립했고,  지금 네덜란드의 최대 명소가 된 고흐 미술관 설립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두번째 찾은 곳은 네덜란드의 자랑 국립미술관 Rijksmuseum입니다. 사진에서 보듯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특별전 중이라서 미술관 앞은 항상 바글바글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는... 심지어 헤이그의 마우리츠 하위스 미술관에 있던 <진주귀걸이 소녀> 까지 특별전에 포함되다보니 이 작품마저 보지를 못했네요. 서둘러 예약하지 못했던게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이 미술관의 최고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이 작품이지요. 

잘알려져 있다시피, 렘브란트의 <야간순찰대 (야경)>는 2019년부터 유리방 안에서 복원작업 중이지요. 이 미술관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1642년에 완성된 작품이다 보니 400여년에 가까운 세월의 때가 앉아있고, 캔버스 천 상태도 많이 취약해져 있기 때문에 복원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완성한 이후 화가로서 나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하지요.  너무나 파격적이었던 탓에 외면당했지만, 예술가로는 더욱 깊어졌던 렘브란트의 생애와 예술혼을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이 곳에서 매우 흥미로웠던 점은, '정치적 올바름' 이었습니다. 네덜란드가 제국주의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예술 작품 속에 나타난 여성과 흑인 등 유색인종에 대한 묘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세가 잘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통한 식민지 착취를 소재로 한 작품 경우 역사적 배경을 잘 설명해준 글을 붙여놓는 식입니다.

렘브란트의 유명한 작품인 마르텐 술만스과 그의 약혼녀 오피엔 코핏의 전신 초상화입니다. 이 작품은 지난 2015년 로스차일드 가문이 가지고 있던 것을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치열한 입찰 경쟁 끝에 1억6000만 유로에 공동 구입하기로 결정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지요.  두 나라가 개인 소장 예술품을 얻기 위해 협력한 것은 미술 시장에서 이례적인 일이어서 당시 많은 관심을 모았던 이 작품은 암스테르담과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교대로 전시됩니다. 이번에 이 작품을 보게 돼 제겐 행운이었네요. 얼굴과 레이스의 섬세한 묘사가 기가 막힙니다.

 

두 그림 옆에 붙어있는 흰색 설명문을 읽어보면, 술만스가 암스테르담 최대 설탕 정제소의 상속자로 중남미와 카리브 지역 농장에서 노예들의 노동을 착취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오피엔은 남편이 죽은 다음에 사업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그녀 역시 노예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녀의 두번째 남편은 아프리카에 있는 네덜란드 식민지에서 지내며 한 여성을 성폭행했고, 이로 인해 그 여성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까지 적시해놓고 있네요.

 

이런 식의 설명문이 많은 그림들에 붙어있는 것을 보면서 예술작품과 역사 문제를 새삼 깊이 생각해보게 됐고, 어두웠던 과거사에 대한 네덜란드의 태도를 엿볼 수있어서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관련된 노력에 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은 영국 가디언 기사를 통해 알아 볼 수있습니다.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21/feb/09/rembrandt-slavery-slave-trade-marten-soolmans-oopjen-coppit

 

Rembrandt and slavery: did the great painter have links to this abhorrent trade?

No artist is more celebrated for their compassion and empathy. So why has the Dutch master’s work been included in a shocking new show linking art and the slave trade?

www.theguardian.com

다음 행선지는 네덜란드의 행정수도 격인 헤이그의 마우리츠 하위스 미술관입니다. 

브라질 총독 마우리츠의 이름에 연유한 이 미술관은 1820년에 개관했고, 크기는 그리 크지 않지만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투프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 페르메이르의 <진주귀걸이 소녀> 등으로 너무너무 유명한 곳이죠. 그러나 <진주귀걸이 소녀>는 없고, 대신  다양한 소녀들의 얼굴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네요...양파 소녀도 보이네요. 

 

그리고 렘브란트...

세번째 작품은 렘브란트가 세상을 떠나기 6년전인 1663년에 그린 <호메로스>입니다. 전성기 때의 화려하고 섬세한 묘사력 대신 거친 붓터치로 그려낸 늙은 호메로스의 모습에 마치 렘브란트의 고단했던 삶과 고통이 그대로 스며들어있는 듯합니다. 이 그림 앞에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네요.  

 

그리고  이 여성... 역사 덕후인 저는  제목을 보기도 전에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보았답니다. 바로바로 제인 시모어.  앤 불린이 처형된 후 헨리 8세의 세번째 부인이 된 여성이죠. 헨리8세의 부인들 초상화들이 나열될 때 반드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바로 그 여성입니다. 이 그림이 이곳에 있었네요. 헨리 8세의 궁정화가였던 독일 출신의 한스 홀바인이 1536년에 완성한 작품이죠. 실제로 보니 그리 크지 않은데, 액자에 다양한 원석들이 들어있는게 인상적이네요. 

 

그리고... 페르메이르의 작품들이 싹 빠진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야콥 브렐 특별전을 마련해놓았네요. 브렐은 1630년에 태어나 1680년 세상을 떠난 화가로, 페이메이르(1632~1675)와 거의 동년배이예요.  브렐 역시 실내 풍경과 거리 모습을 즐겨 그렸다고 합니다.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뭔가 다른 느낌이죠? 미술관은 '페르메이르의 선구자'로 평가하고 있군요. 

 

시립미술관 Stadelijk도 빼놓을 수없습니다. 현대 미술과 디자인을 다루는 미술관이지요. 

이곳에 있는 작품들도 쟁쟁합니다. 샤갈, 칸딘스키, 앙소르, 말레비치 등등...

현대미술관 답게 사진과 포스터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있어요.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암스테르담 호텔의 객실에서 침대에 누워 벌였던 평화시위를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명인 시그마 폴케의 작품입니다. 핵 등으로 고통받는 현대 사회를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