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이끌 능력있는 지도자를 잃어버린 러시아 국민들의 삶은 극심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나날이 피폐해져간다.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은 서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데만 열중하고, 이 틈을 타 외세가 침입하자 분노한 러시아 민중들은 단결하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듯했던 ‘혼란의 시대’는 민중들이 강력한 카리스마와 통치력을 가진 인물을 새로운 지도자로 추대함으로써 결국 막을 내리고 러시아는 번영을 맞게 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소련체제 붕괴 이후 십여년동안 정치, 경제적으로 상당한 혼란을 겪어야했던 러시아를 안정궤도에 올려놓은 지도자임에 틀림없다.
그는 국내적으로는 카리스마와 막강한 통치력을 과시하는 한편, 국제적으로는 이라크전 등 각 이슈마다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러시아의 파워를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고유가시대를 맞아 쏟아져들어오는 오일달러 덕분에 푸틴의 위세와 권력기반은 그 어느때보다도 탄탄한 상황이다.
경제,사회,정치적 혼란으로 고통받는 러시아인들의 삶과 강력한 지도력의 중요성을 다룬 영화 한편이 최근 러시아에서 개봉됐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을 거슬러 올라가, 로마노프 왕조의 등장 이전 약 15년에 걸친 러시아역사상 최악의 혼란시대를 다룬 영화 <1612>가 바로 주인공 영화.
하지만, 현재의 러시아 및 푸틴 체제를 단박에 연상시키는 정치적 함의 때문에 <1612>에 러시아 안팎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특히 크렘린이 이 영화를 사실상 후원하고 있으며, 친푸틴계열 인사 상당수가 이 영화제작에 참여했다는 것. 서구 언론들은 <1612>가 국가두마(하원)총선을 한달 남짓 앞둔 시점에서, 그리고 특히 푸틴의 3선 도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때에 맞춰 개봉했다는데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 있다. 즉, 푸틴바람을 일으키려는데에 이 영화의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다.
러시아 역사상 1598년~ 1713년은 ‘혼란의 시대(Times of Troubles)’로 불린다. 1598년 류리크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인 표도르가 적자없이 사망하자 왕위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졌으며 때맞춰 스웨덴, 폴란드 등 외세가 침입해 모스크바를 장악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 남부와 중부를 비롯한 여러지역에서 사회적 경제적 파탄이 초래됐고 농민 봉기가 극심했다.
1610년 폴란드 군대가 모스크바에 입성하자, 분노한 러시아 인들은 침략자에 대항하기 위해 단결한다. 러시아 민중군은 1612년 폴란드군을 무찌르는데 성공하고, 이듬해 전국적인 대표모임을 통해 미하일 로마노프를 짜르로 선출했다. 20세기초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3세기동안 러시아를 다스리게 될 로마노프 왕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1612>는 이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칼싸움, 기마전투 등이 자주 등장하는 역사액션물로, 영자지 모스크바타임스는 최근 리뷰에서 “인상적인 비주얼”을 높이 평가했다.
지난 3일 러시아 전역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블라디미르 코티넨코 감독의 작품으로, <위선의 태양><러브 오브 시베리아>로 유명한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코티넨코 감독은 최근 이즈베스티아지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와 푸틴정권 간의 유사성을 사실상 인정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혼란기와 17세기의 혼란기는 공통점이 매우 많다. 당시(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도 러시아들은 고난을 겪어야했다. 나는 17세기가 러시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를 이해하지 않고는 러시아를 이해할 수없다. 나는 민주주의를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러시아국민들은 ‘짜르’에 대한 뿌리깊은 열망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제작자인 니키타 미할코프는 코티넨코 감독보다 한 술 더 뜬다. 그는 지난달 말 푸틴에게 “제발 3선 대통령이 돼달라”는 호소를 담은 공개서한을 보냈다. 러시아 헌법에 따르면, 한 사람이 대통령직을 3번 연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한차례 건너뛰어 4년뒤 출마해 당선되는 것은 가능하다.
푸틴 자신은 다시 대통령이 될 생각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없다. 일각에서는 내년 3월로 예정된 대선 전에 , 푸틴이 의회로 하여금 헌법을 고치도록해 3번 연임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란 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영화의 제작비 상당부분을 댄 빅토르 벡셀베르크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석유재벌 중 한사람으로, 소련체제 붕괴 이후 경제난이 초래됐을 때 헐값으로 해외로 빠져나갔던 유물들을 거액을 들여 되사들여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인물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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