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로 본 세상

스파이크 리, 이번엔 카트리나 다큐로 논쟁

bluefox61 2006. 8. 25. 14:18

2005년 8월 29일 새벽. 시속 145마일(시속 약 233km)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재즈와 매콤한 케이준 요리의 본고장인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즈를 덮쳤다. 

이때만 하더라도 뉴올리언즈 주민들은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허리케인이 불어닥쳤다가 지나갈 것으로 생각했었다. 멕시코만을 따라 이동하던 카트리나의 위력이 뉴올리언스에 도달할때쯤이면 예상보다 조금 누그러질 것이란 기상예보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새벽,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가 발생했다. 폰차트레인 호수를 막고 있던 둑이 갑자기 터지면서,수면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뉴올리언즈의 대부분 지역이 순식간에 물에 잠겨버리고 말았던 것.

홍수야 어느나라, 어느도시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연재해의 혼란 속에서 전세계에 드러난 뉴올리언즈, 아니 미국의 감춰졌던 참모습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극단적인 빈부격차와 인종갈등이자, 혼란과 공포, 그리고 무능과 부패의 추악한 얼굴이었다.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즈를 할퀴고 지나간지 오는29일이면 꼭 1년이 된다. 이를 앞두고 카트리나가 미국 사회에 남긴 상처를 되돌아보는 움직임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흑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가 논쟁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뉴올리언스 시민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목소리를 기록한 4시간짜리 다큐멘터리 <둑이 터졌을 때; 4장(章)의 레퀴엠>를 최근 발표하고, 부시 행정부와 미국사회의 가진 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20일 뉴올리언스 시민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가진후, 21일과 22일영화전문채널 HBO를 통해 연속 방송됐다. 뉴올리언스 침수 1주년인 29일 HBO는 스파이크 리의 다큐 전편을 다시한번 방송할 예정으로 있다.



최근 동부 매사추세츠주 휴양지로 유명한 마사스 비녀드에서 개최된 카트리나 재해 관련 토론회에서 스파이크 리는  “만약 카트리나 사태가 남부 뉴올리언즈가 아니라 바로 이곳 마사스 비녀드에서 일어났더라면 정부의 대응은 전혀 달랐을 것”이라면서 늦장대응으로 엄청난 피해를 초래한 부시 정권과 백인 지배층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그런가하면 토론자로 참석한 한 하버드대 교수는 <둑이 터졌을 때>를 “놀랍도록 감동적인 영화”로 극찬하면서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이 강제라도 이 작품을 보게 만들어야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총 4부로 구성된 <둑이 터졌을 때>는 정작 카트리나와 연관된 정치적 책임공방보다는 주민들의 절규를 충실하게 담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때문이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임시가옥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중년여성은 카트리나 사태 당시 “이재민들이 잘 대우받고 있다”고 말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자초했던 바버라 부시 전 대통령 부인을 향해 목소리를 높힌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잘 대접받았다는 이야기인가. 내 전화번호는 000-0000이다. 바버라는 내게 전화를 걸어라. 어디 한번 직접 따져보자”라며 카메라를 향해 울분을 터트렸다.

그런가하면, 한 남성은 전기공급 중단으로 찜통처럼 변해버린 이재민 수용소에서 사망한 어머니의 시신을 그곳에 그대로 내버려둔채 강제로 다른 주로 이주당했던 당시를 회상하면 눈물을 흘렸다. 또다른 여성도 온가족이 군경의 강요에 쫓겨 각주로 흩어져버렸다면서, “마치 19세기 노예시장에 끌려나온 우리 선조들이 뿔뿔이 다른 곳으로 팔려나가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렸던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스파이크 리 감독은 아직도 노예처럼 대우받고 있는 미국 남부 흑인들의 처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전설적인 흑인 재즈 가스 루이 암스트롱의 명곡 ‘뉴올리언즈를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Do You Know What It Means to Miss New Orleans)’가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수많은 언어로도 표현해낼 수 없는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마무리된다.

 

다음은 리감독이 최근 시사주간지 US 뉴스 &월드리포트와 가진 인터뷰. 그는 <둑이 터졌을 때>의 제작을 위해 뉴올리언즈를 9차례 방문했다고 밝혔다.


-언제 이 영화를 만들 결심을 했는가.

“뉴올리언즈 사태 직후다. 당시 나는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에 참석하고 있었다. 베니스도 뉴올리언즈처럼 수면 보다 낮은 도시아닌가. TV 뉴스화면을 통해 전해지는 뉴올리언즈의 이미지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영화 끝부분에서 ‘카트리나’란 이름이 붙은 관을 들고 재즈 밴드가 행진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떤 의미인가.

“뉴올리언즈에서는 재즈음악을 연주하면서 장례행진을 하는 것이 전통이다. 나는 ‘카트리나’자체를 장례치르고 싶었다.”

-카트리나를 묻고 싶었다는 말인가.

“누군가를 땅에 묻는다고해서 그를 완전히 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카트리나와 함께 초래됐던 것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부에서는 당신의 영화가 뉴올리언즈 사태를 충실하게 다루지 못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당신은 뉴올리언즈 중에서도 제9지역의 희생자들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에 흑인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특정지역의 희생자들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것, 뉴올리언스 백인 시민들 , 나아가 미국 사회의 백인들까지도 아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둑이 카트리나 때문에 무너진게 아니라 고의로 파괴됐다는 근거없는 소문까지 다루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뉴올리언스 시민들이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영화속에서 많은 시민들이 정부에 대해 분노를 나타냈다. 영화 제작과정에서 부시 대통령이나 딕 체니 부통령과 접촉해봤나. 그들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려고 해봤나.

“그렇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이야기하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놀랐는가.

“아니다.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그럴 줄 이미 알고있었다. 만약 그들이 인터뷰에 응했다면 변호사를 대동하는게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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