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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메가박스에서 열리는 일본영화제에서 
미이케 다케시의 [오디션]과 구로사와 기요시의 [회로]를 봤습니다. 
[오디션]은 일본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수년전부터 악명이 자자했던 영화죠. 
[링][소용돌이][주온] 등은 [오디션]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아동용이지요. 
저 역시 수년전 이 영화를 '야메' 비디오로 봤는데, 화질이 너무 나빠서 고생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관에서 제대로 보니까, 처음 봤을때의 충격과 또 다른 맛이 있더군요. 
가녀린 분위기의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의 온몸에 기다란 바늘을 꽂으며 
생글생글 웃으면서 '끼리 끼리 끼리( '깊이 깊이'란 뜻이라죠?)'라고 혼자서 주문처럼 
외던 대사도 소름끼치도록 실감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적으로만 보자면, 고통으로 반쯤 실신한 남자의 상상과 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설정이 
새삼 다가오더군요. (지금까지의 사건이 꿈이었다는 식으로 뒤집었다가, 꿈인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진짜 현실이라고 다시한번 뒤집는 , 그 놀라운 발상!) 

제 기억으로 99년인가, 2000년에 만들어진 영화이니 벌써 상당기간이 지났군요. 
그동안 일본영화 국내 개방 문제가 거론됐을때마다, 하나의 기준이 됐던 영화였던 만큼 
이번 전면개방 조치와 함께 과연 [오디션]이 국내에서 정식 개봉될 수있을런지 궁금하네요. 

[회로]는 일본 공포영화의 또다른 수작으로 꼽히는 [큐어]를 만든 
구로사와 기요시의 2001년도 영화입니다. 인터넷망을 통해 유령을 접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가고 결국엔 일본사회가 황폐해져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일종의 유령바이러스라고 할 수있는데 , 대니 보일의 [28일후]와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많은 영화죠. 
특히 텅빈 도쿄의 거리 풍경은 [28일후]의 런던 풍경과 매우 흡사합니다. 

개인적으로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 중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역시 [큐어]입니다. 최면으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해 살인을 사주하는 남자와 
그의 정체를 뒤쫓는 형사 간의 심리갈등을 그린 이 영화는 [오디션]과 달리 
엽기적인 장면은 별로 없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옥죄는 긴장감이 탁월합니다. 
[회로]는 [큐어]만큼 탁월한 작품은 아니지만, 
감독의 재능을 충분히 확인할 수있을 만한 영화입니다. 

[오디션]과 [회로]를 보면서 새삼 느낀 것은 , 일본영화에는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없는 일본만의 공포의 색깔이 분명히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유럽(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아르젠토 영화)의 공포영화들이 아무리 유혈 낭자하다할지언정, 어린 여자아이의 가장 예민한 속살을 벌겋게 단 인두로 지지거나, 눈에 바늘을 박는다든지, 줄칼(철사처럼 가늘게 생긴 칼)로 멀쩡한 사람의 발을 잘라버린다던지(모두 [오디션])하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영화는 제가 아는한 일본밖에 없는 것같습니다. 
(미이케 다케시의 또다른 영화 [이치 더 킬러]에 비하면 [오디션]은 약과라 하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일본공포물이 단순히 엽기적이란 점을 넘어서, 
일본사회의 병폐를 드러내는 분명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런 기괴한 상상이 가능하다는 점 자체가 병리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일본 공포영화들은 폐쇄적인 사회의 억압, 고도로 자본주의화된 사회 시스템속에서 
왜소화된 인간의 모습, 그리고 버블경제의 붕괴가 가져온 몰락의 불안 등을 치열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회로] 경우 , 사람들이 유령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을 몰고 오기 때문이 아니라 
그 것이 죽은 뒤에까지도 영원히 고독한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구로사와 기요시가 이런 말을 했답니다. 
″인간이 시스템을 극복하는 방법은 세가지이다. 첫번째는 죽는 것, 두번째는 범죄자가 되는 것, 세번째는 바로 미치는 것이다.″ 

[오디션][회로] 등 일본 공포영화를 단순히 '엽기'로만 치부할 수없는 것은, 
아마도 어쩌면 그것이 우리 사회의 멀지 않은(어쩌면 이미 존재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Posted by bluefox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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