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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작곡가 최영섭

마치 한편의 짧은 드라마를 본 듯했다. 오페라의 환희에 넘치는 장면이나 대규모 코러스 부분을 설명할 때 그는 두 손을 위로 치켜들거나 앞으로 쭉 내밀면서 직접 연기를 해보였다. 대사를 읊는 목소리도 한 옥타브쯤 높아져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위기에 직면하는 장면에서는 얼굴표정이 슬픔으로 가득찼고,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는 장면에서는 절절한 몸짓을 해보였다. 20대 때 가졌던 꿈을 80세에 이룬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오롯이 기쁨일까, 시원섭섭함일까. 아니면 또다시 초조함을 느끼게 될까. 아마도 그 모든 것이 아닐까 싶다. 작곡가 최영섭(80)씨가 평생의 목표이자 꿈이었던 대작 오페라를 드디어 완성했다. 특히 올해는 첫 작곡회를 연 지 꼭 60년째 되는 해란 점에서..

인터뷰/사진작가 배병우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 영국 팝가수 엘턴 존, 벨기에의 필립 왕세자를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바로 한국의 사진작가 배병우(59·사진)씨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6월 정상회담차 워싱턴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배병우씨의 사진집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선물로 받았다. 엘턴 존은 2005년 그의 유명한 소나무 사진을 보더니 “바로 나를 위한 작품”이라고 격찬하며 1만5000파운드(현재 환율로 약 3136만원)를 내고 구매했다. 당시까지 한국 사진 작품 판매가로는 최고기록이었다. 필립 왕세자는 올해초 “당신의 소나무 사진을 보고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며 배병우씨를 수도 브뤼셀의 왕궁으로 직접 초대하기도 했다. 배병우씨의 사진작품에 반한 이들은 세 사람말고도 일일이 손꼽기에 벅찰 지..

인터뷰/가수 심수봉

첫인상은 ‘충격’이었다. 1978년 MBC 제2회 대학가요제 TV방송을 통해 그를 처음 ‘만났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평범한 외모와 자그마한 몸집의 여학생이 흰색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며 불렀던 ‘그때 그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금이야 ‘재즈피아노’가 대중화됐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가수가 재즈스타일로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부르는 트로트 가요란 듣도보도 못한 것이었다. 대학생들의 풋풋한 열기와 매력으로 넘쳐나는 대학가요제에서 심수봉이란 여학생의 존재는 매우 이질적이었다. 그렇게 첫만남을 가진 지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가수 심수봉은 이제 현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아티스트가 됐다. 20세기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에 비극적으로 휘말..

인터뷰/ 션, 정혜영

지난 7일 오후 3시 경기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단국대 내 학생극장. 학생 300여명의 눈과 귀는 한 남자에게 쏠려있었다. 연단에 선 사람은 힙합듀오 지누션의 션(36·한국명 노승현). 그의 강연은 엉뚱하게도 아내인 탤런트 정혜영과 션 자신의 2004년 결혼식 비디오 상영으로 시작됐다. “우리 두 사람뿐만 아니라 하객 모두 참 행복해보이죠? 큰 행복을 함께 느껴보고 나니깐 아내에게 뭔가를 제안하기가 참 편하더라구요. 손에 움켜쥐기보다는 좋은 일을 하며 살자고 했지요. 매일 1만원씩 모아서 매년 결혼기념일에 기부하자고 제안했는데, 큰 부담은 없는 액수이기 때문인지 아내가 선뜻 그러자고 하더라구요. 1년 동안 매일 1만원씩 모으니까 1500명에게 이틀 동안 식사를 제공하고도 남는 돈이 됐습니다. 여유있을 때..

인터뷰/배철수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은 틀림없는 사실인 모양이다. 1970년대말~80년대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라고 부르짖으며 ‘청년문화’의 코드가 됐던 한 남자가 있다. 마른 몸매는 20대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머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지 이미 오래다. 50줄의 나이에 들어선 지도 벌써 6년째. 그런 시간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청년정신’을 잃지 않은 채 음악과 함께, 마이크 앞에서, 20대 전후의 젊은 청취자들과 교감하며 19년의 세월을 보내왔다면 그는 진정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배철수(56). 이제는 록가수라기보다는 디스크자키, 방송인으로 더 익숙해진 이름이다. 그가 1990년 3월19일부터 진행하고 있는 MBC 라디오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오후 6~8시)..

인터뷰/신애라,차인표

탤런트 신애라(40)씨는 지난 3월 남편 차인표씨와 함께 다녀왔던 아이티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카리브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나라 아이티는 지난 수십년 동안 이어져온 정치불안과 철마다 반복되는 허리케인, 폭우 등 자연재난으로 찢길 대로 찢긴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두 사람은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국제 아동구호재단 컴패션을 통해 이곳을 찾았다. “필리핀과 에티오피아에서 상상하기도 어려운 끔찍한 가난에 처해 있는 어른, 아이들을 수없이 만났어요. 하지만 아이티는 그 나라들과 또 다르더군요. 필리핀과 에티오피아에서는 가난한 사람들만 가난했다면, 아이티는 말 그대로 전국민이 걸인인 듯 보였어요.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저희에게 뭔가를 달라고 하더라고요. 손목시계는 물론이고 눈에 보이는 것은 모..

아카데미가 주목한 낯선 배우들

국내개봉 중인 는 뭐니뭐니해도 ‘배우의 영화’이다. 탄탄한 시나리오야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무엇보다 뛰어난 작품이란 의미다. 이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중심 캐릭터는 개방적인 플린 신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알로이셔스 수녀, 순진무구한 제임스 수녀 3사람이다. 각각의 캐릭터를 맡은 배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메릴 스트립, 에이미 애덤스는 약10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관객의 심리를 쥐었다 폈다 하면서 “연기란 과연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에는 위의 3명 이외에도 빼놓을 수 없는 또한명의 캐릭터가 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이 발생한 직후인 1960년대 초 , 미국 뉴욕 브롱크스지역 가톨릭고등학교의 유일한 흑인학생인 도널드의 엄마 ‘밀러부인’이다. 영화 속에서 밀러부인이..

<미국의 종말>, 또는 한국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경고

등의 저작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저명한 페미니스트이자 진보적 사회비평가인 나오미 울프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딸인 친구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대해 대화하다가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적인 외교정책, 대테러전을 명분삼아 제정한 ‘애국법’, 인권탄압적인 정책들, 언론 및 사회단체 감시, 급격하게 보수화 및 획일화되어가는 미국 사회의 모습에 대해 자신이 비판을 쏟아낼때마다 친구는 한결같이 “나치 독일에서도 그랬어”라고 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친구는 의아해하는 울프의 손을 서가로 이끌고 가서 , 나치 독일의 역사책을 읽어보라고 권유했다. 울프는 책을 펼쳐 읽어내려가는 순간,60~70여년전 나치 독일이 저질렀던 만행 하나하나 바로 지금 이시대, 부시 정부 시대의 그것과 놀랄..

이 아이들을... 가자 사태를 '낙종'한 이유

가자사태와 관련해서 최근 보도가치가 충분한 기사를 의도적으로 낙종했다. 윤리적 이유때문이었다. 문제의 낙종 기사는 외신 사진이었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더미 사이로 이제 겨우 세살 남짓돼보이는 소녀 시신이 얼굴만 드러내놓고 있는 사진이었다. 숨을 거둔지 이미 수시간이 지났는지 소녀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있었다. 흙더미 틈을 비집고 고사리같이 작고 연약한 손 하나만 비쭉 나와 있는 외신 사진도 있었다.가자의 처참한 상황을 100줄의 기사 대신 단 한 컷의 이미지로 전달하는 더없이 훌륭한 사진 기사들이었다.그러나 문제는 지면에 게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결국 두 장의 사진은 문화일보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아니, 이 사진들은 국내 어떤 신문 지면에도 실리지 않았다. 두장..

칼럼/하마스의 아이들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가자사태와 관련해서 최근 보도가치가 충분한 기사를 의도적으로 낙종했다. 윤리적 이유때문이었다. 문제의 낙종 기사는 외신 사진이었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더미 사이로 이제 겨우 세살 남짓돼보이는 소녀 시신이 얼굴만 드러내놓고 있는 사진이었다. 숨을 거둔지 이미 수시간이 지났는지 소녀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있었다. 흙더미 틈을 비집고 고사리같이 작고 연약한 손 하나만 비쭉 나와 있는 외신 사진도 있었다.가자의 처참한 상황을 100줄의 기사 대신 단 한 컷의 이미지로 전달하는 더없이 훌륭한 사진 기사들이었다.그러나 문제는 지면에 게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결국 두 장의 사진은 문화일보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아니, 이 사진들은 국내 어떤 신문 지면에도 실리지 않았다. 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