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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올드먼

드디어 나왔습니다. 아니, 너무 늦게 나왔나봅니다. [내가 사랑하는 배우들]의 첫머리는 당연히 게리 올드먼이어야 했습니다. 너무 아끼는 나머지(솔직히 멋있게 써보리라는 욕심때문에), 이렇게 순서가 뒤로 쳐지고 말았네요. 게리 올드먼과 맹목적인 사랑에 빠지기는 이미 10여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시드와 낸시]에서 섹스 피스톨스의 시드 비셔스 역으로 단박에 마음을 빼앗아갔던 그는, [JFK]의 저격범 오스월드를 거쳐 [드라큐라]의 영원히 잊지 못할 드라큐라로 다시 찾아왔지요. [로미오 이즈 블리딩]에서 레나 올린과 파괴적인 사랑을 나누던 그의 모습도 기억납니다. 사실 게리 올드먼가 영화 속에서 보여준 연기들은 거의 영화사에 기리 남을만한 강렬한 것들이라 할 수있지요. [레옹]에서 레옹이 숨어있는 아파트를 습..

양조위

[2046]의 스틸 한장 바라보고 있습니다. 양조위가 한 여자를 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자는 등을 보인채 남자에게 안겨있습니다. 양조위는 여자의 어깨 넘어 허공을 응시하고 있지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이 한장의 사진에 양조위의 모든 것이 담겨있지 않은가요. 여자를 가슴에 안은채 이처럼 처절하게 우울한 눈빛을 지닐 수있는 남자가 양조위말고 또 있을까요. 양조위는 자기복제와 쾌락이 넘쳐나는 홍콩 영화계에서 마치 고요한 섬과 같은 존재가 아닐런지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더 깊어지고 여유로워지는 배우가 바로 양조위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할리우드를 거치지 않고도 세계적인 배우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한 중화권 유일의 연기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왜소하고 평범한 외모의 이 남자의 어디에서 도대체 이런 내공이..

버지니아 매드슨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사이드웨이스’ 보셨나요. 와인매니아가 아니어도, 와인을 마구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죠. 이 영화를 보면서, 미당의 시 ‘국화옆에서’가 떠올랐습니다. 한 명의 여배우때문이죠.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란 구절을 연상시킨 배우는, 와인가게 종업원 마야로 출연한 버지니아 매디슨입니다. 63년 9월 생이니, 벌써 그녀도 마흔고개를 넘었군요. 사람은 먹을 것에 비유해서 좀 뭣하지만, ‘사이드웨이스’가 향긋한 와인향을 제대로 머금은 영화가 될 수있었던 것은 바로 딱 알맞게 농익은 와인같은 배우 매드슨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혼의 상처로 마음을 닫고 살아왔을 마야가 친구의 집에서 마일스(폴 지아마티)와 와인잔을 기울이며 와인에 대해..

리즈 위더스푼

반짝거리는 자연산 금발머리 이외에 그리 눈에 확띄는 미모라고는 할 수 없는 자그마한 체구의 여배우가 지금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리즈 위더스푼(사진) 말이죠. 최근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앙코르'로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은 그는″ 내 평생 이 자리에 서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수상소감을 밝혔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영화팬들 역시 위더스푼이 이십대를 갓 넘긴 나이에 오스카 트로피를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앙코르'에서 전설적인 가수 자니 캐시의 '운명적사랑'인 준 캐쉬를 열연하기는 했지만, 워낙 로맨틱 코미디 전문 배우쯤으로 각인이 돼왔던 터라 연기파들이 대접받는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을 것으로 인식돼왔기 때문이죠. 일부 언론들은 ..

칼럼/가자 장벽 위의 아이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 놀고 있었다. 제 키를 훌쩍 넘어 2~3m는 족히 돼보이는 장벽은 불도저에 밀려 힘없이 옆으로 넘어져 있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모처럼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아마도 몇개월만에 느껴보는 즐거움이자 자유였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라파에서 전해져 온 한 장의 외신사진이 마음을 끌었다.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파의 분리장벽이 23일 결국 팔레스타인인들에 의해 무력으로 무너져버린 것. 이번 사태는 이날 새벽 복면을 쓴 일단의 청년들이 장벽 일부를 폭파하면서 시작됐다. 일각에서는 팔레스타인 무장정치조직인 하마스 조직원들이 주도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하마스측은 이를 부인했다. 지난 수개월동안 이스라엘의 경제봉쇄 때문에 연료, 물, 의약품 등 생필품 부족으로 고통받아온 가자 주민들의 입장에..

가자 장벽 위의 아이들

무너진 콘트리트 장벽 위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 놀고 있었다. 제 키를 훌쩍 넘어 2~3m는 족히 돼보이는 장벽은 불도저에 밀려 힘없이 옆으로 넘어져 있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모처럼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아마도 몇개월만에 느껴보는 즐거움이자 자유였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라파에서 전해져 온 한 장의 외신사진이 마음을 끌었다.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파의 분리장벽이 23일 결국 팔레스타인인들에 의해 무력으로 무너져버린 것. 이번 사태는 이날 새벽 복면을 쓴 일단의 청년들이 장벽 일부를 폭파하면서 시작됐다. 일각에서는 팔레스타인 무장정치조직인 하마스 조직원들이 주도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하마스측은 이를 부인했다. 지난 수개월동안 이스라엘의 경제봉쇄 때문에 연료, 물, 의약품 등 생필품 부족으로 고..

루마니아 영화가 뜬다

유럽의 최빈국으로 알려져온 루마니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의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최근 “루마니아로부터 세계 영화의 새로운 포스(force)가 일어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세계 유명 영화제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는 루마니아의 ‘젊은 영화’들을 집중 조명했다. 한마디로, 1989년 차우셰스쿠 공산 독재체제의 붕괴 당시만 하더라도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던 루마니아가 지금은 유럽 영화의 새로운 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국내 개봉 중인 코르넬리우스 포룸보이우 감독의 로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유명 감독으로, 이 작품을 가지고 지난 2002년 부천국제영화제를 직접 방문한 적도 있다. 역시 2007년 칸 영화제에서는 또하나의 루마니아영화..

2008, 감자의 해

유엔은 국제사회가 함께 해결해야할 과제를 되새기기 위해 해마다 ‘유엔이 제정한 해’를 발표해오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는 ‘지구의 해’였고, 2006년은 ‘사막과 사막화의 해’, 2005년은 ‘마이크로 크레딧(소액대출)의 해’였다. 2008년은 바로 ‘감자의 해’다. 흔하디 흔한 작물인 감자를 올해의 주제로 내세운 것이 좀 생뚱맞아 보이지만, 속 사정을 들여다보면 21세기에도 감자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특히 감자라는 식용작물 하나를 통해 지금 현재 국제사회가 직면해 있는 수많은 난제들을 단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인간이 감자를 재배하게 된 것은, 잘 알려져있듯이 약 8000년 전 남미 안데스지역에서부터였다. 한반도에 전래된 것은 조선시대 순조 때인 ..

미국의 이라크 학습효과?

“내가 낄낄 웃더라고 전해줘요.”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이 지난 5일 네브래스카 오마하의 한 행사에 참석했다가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미국 16개 정보기관들이 국가정보평가(NIE)보고서를 통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중단 사실을 공개한 이후, 이란 대통령이 미국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 기자들의 질문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불과 한달 남짓 전까지만해도 이란의 핵무기개발이 3차세계대전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국제사회에 경고했으며, 부시행정부의 매파들은 시시때때로 “모든 옵션(선택)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말로 대(對)이란 군사작전 가능성을 암시해왔었다. 따라서 지난 3일 발표된 보고서의 내용은 부시행정부의 이란 압박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충격적..

칼럼/로스트 라이언즈

국내 상영 중인 로버트 레드퍼드 감독의 ‘로스트 라이언즈’의 원제목은 ‘라이언스 포 램스(Lions for Lambs)’다. 직역하면 ‘양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자들’쯤인데, 속 뜻은 좀 복잡하다. 이 표현은 1차세계대전 중 가장 치열했던 솜 전투 때 독일의 한 장군이 무능한 장교들 때문에 떼죽음 당한 영국군 병사들을 안타까워하며 했던 말로 알려져있다. 그런가하면 영국 역사가 앨런 클라크가 1차세계대전을 조명한 저서 ‘당나귀들’에서 “멍청한 당나귀들(장교 또는 지도자들)이 사자들(영국 군인들)을 잘못 이끌었다”고 비난한 문장이 조금 바뀌어 후대에 전해졌다는 주장도 있다.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 표현의 원작자가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점이다. 그가 남겼다는 말은 정확하게 이렇다. “나는 전쟁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