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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촌것, 제주 올레를 가다(2) - 혼자걷기 두려운 9코스

bluefox61 2012. 12. 3. 11:42

꼭 1년만에 제주올레를 다시 찾았습니다.

지난번에는 세미나차 제주를 방문한 길에 얼렁뚱땅 잠시 맛본 올레길이었지만, 이번엔 좀 제대로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코스 전체를 걷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올레의 맛과 제주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있는 좋은 기회가 됐답니다.

매번 걸으면서 느끼는 점이지만, 앞서 그렇게나 많이 제주를 왔다갔다했는데도 자동차를 타고 소위 관광지만 돌아다니며 제주를 느꼈던 것과 직접 걸으며 제주 구석구석을 체험하는 것은 전혀 다르더군요.

 

이번에 제가 제대로 걸은 코스는 올레 9코스입니다. 대평포구에서 시작해 화순 금모래해변까지 총 8.2km 로, 18~19km에 이르는 11,14,15코스에 비하면 짧지만 산과 들판, 계곡과 절벽 등 변화가 아주 많은 난이도 상급 코스라고 합니다. 특히 지도를 보면 , 해변에서 안쪽으로 상당히 깊숙히 들어와있는 코스로 약 3시간 쯤 걷는 동안 인적이 전혀없고 소 몇마리만 만날 수있는 아주 한적한 곳이랍니다. 

저와 일행이 만난 사람은 중간에 마주친 남성 올레꾼 1명뿐이었습니다. 3주째 올레길을 걷고 있다고 하더군요. 누가봐도 홀로 걷는 올레꾼으로 보였길래 망정이지, 동네 건달같은 사람이었으면 굉장히 놀래고 겁을 먹었을 겁니다. 그 분 말이 며칠전 혼자 걷는 여자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은 합기도에 무술 유단자였다면서, 아무리 두명이라도 여자들끼리는 으슥한 9코스는 들어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건네주신게 접이식 칼!! 말로는 다니면서 과일도 깍아 먹고 그러라고 했지만, 스위스 아미나이프의 큰 제품이 얼마나 비싼지 아는지라, 걱정스런 마음에 안전을 도모하라는 의미로 주신 것같았습니다. (허걱!)

 

아무튼 , 안전상의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9코스는 강추하고픈 코스임에 분명합니다.

 

코스는 대평포구에서 시작됩니다.

포구에서 바라본 박수기정입니다. 기정은 제주말로 절벽을 뜻하는데,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린 곳이란 전설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합니다. 절벽의 단면이 예리한 것이 장관입니다.

 

 

대평포구는 그리 크지않은 아담한 곳으로 , 초겨울이니만큼 오가는 사람없이 한산했습니다. 대평의 제주말은 '난드르'인데, 들이란 말이 드르가 된 것같습니다.

 

 

9코스 입구에 서있는 올레 표지판입니다. 올레길을 걸을때 가장 의지가 되는 것은 이 표지판과 나뭇가지에 묶여져 있는 올레 리본표시였습니다. 왼쪽에 있는 것이 9코스 지도인데 쑥 들어가있는 지점이 보입니다. 앞서 남자 올레꾼이 혼자 걷기에는 좀 너무 깊은 곳이라고 한게 바로 이런 지형때문입니다.

 

 

 

9코스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좁다란 돌길. 이름은 '몰질'. 이 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면 박수기정 위에 너른 들판이 나오는데, 예전에 고려시대때에는 그 위에서 기른 말들을 원나라에 보내려고 이 길을 이용해 말을 데리고 내려와 대평포구에서 배에 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수백년 된 길인 거죠. 아주 운치가 있습니다. 제 동행이 고독한 올레꾼 포스를 풍기며 앞서 걷고 있습니다.

 

몰질을 왠만큼 걸어올라가면, 볼레랑(보리수)길이 나오고 갑자기 탁트인 들판이 나타납니다. 절벽위에 이런 들판이 어떻게 있나 싶은게 놀랍기까지 하더군요. 그리고 그 위에 밭을 일구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멀리 집 한채도 보였습니다.

 

 

박수기정의 끝부분에 서있는 추락주의판과 드넓게 펼쳐진 바다의 모습입니다. 구름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면서 바다 표면에 마치 스포트라이트같은 효과를 만들어내는 자연의 위대함을 한동안 넋놓고 바라봤습니다.

 

 

 

멀리 산방산의 웅장한 모습도 보입니다.

 

 

9코스를 걷다가 곳곳에서 마주치는 누런 소들. 소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지나칩니다.

 

들판을 지나면 약간 내리막길이 나오다가 다시 월라봉으로 향하는 오르막길로 바뀝니다.  걷다가 만나게 되는 일본군 동굴진지의 입구. 총 7개의 인공동굴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굴과 굴 사이가 이어지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1945년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일본이 제주도를 군사기지로 삼았던 자취들이 여기저기 남아있는데  , 이 굴도 그런 것들 중 하나이지요. 그 옛날 이곳을 군인들이 무기를 짊어지고 어찌 올라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의 침탈역사를 다시 생각해볼 수있는 장소입니다.

 

본격적인 내리막 코스로 내려오가다 만난 푸르른 밭. 작물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사람 키만한 높이로 자라난데에다가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제게 접이식칼을 선물로 주신 분과 제 동행이 앞서 걸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저 남자분은 올레 전코스(총 21코스)를 다 걸을 계획이라고 하는데, 어디서 오셨는지 무슨 사연으로 장기 여행 중인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걷고 계시겠네요. 멀리 보이는 해변가의 공장처럼 보이는 곳은, 서울와서 찾아보니 화순화력발전소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해변가에 제주에서 보기드믄 정유공장 비슷한게 떡하니 자리잡고 있어 좀 생소해보였는데, 제주 주민들을 위한 전력생산 발전소이니 필수 시설이라고 하겠습니다.

 

 

원래는 화순금 모래해변까지 쭉 걸어야하지만, 저는 안덕계곡 입구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안덕계곡의 모습입니다. 꽤 깊어보이지요.

계곡 안쪽으로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제주의 계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라고 합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절벽과 평평한 암반 바닥에서 유유히 흐르는 맑은 물이 멋스런 운치를 자아낸다고 하네요. 안덕계곡은 먼 옛날 하늘이 울고 땅이 진동하고 구름과 안개가 낀지 7일만에 큰 신들이 일어서고 시냇물이 암벽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 치안치덕(治安治德)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

군산(軍山) 북사면에서부터 월라봉(月羅峰) 서사면을 절단하여 이루어진 깊은 계곡으로 해안하구에 이르기까지 상시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 동쪽 단애면 지역의 지질은 단단하고 판상절리가 잘 발달한 조면암 계통인 데 비하여 서쪽 단애면의 지질은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 장석반정이 많은 현무암이 분포한다고 하네요.

 

 

큰 도로길로 내려와 택시를 잡아타고 출발지였던 대평포구로 컴백. 렌트카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차를 가지고 다니는 올레꾼 경우엔 코스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걸은 다음, 택시를 타고 출발지로 되돌아오곤 한다고 합니다. 그래선지 제주 택시분들은 그런 손님에 아주 익숙한 것같더군요. 미터대로 가지는 않고, 대부분 5~7천원의 요금을 불렀습니다. 차로 출발지로 되돌아오는데는 약 1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걸어선 3시간쯤이나 걸렸는데 말입니다.  ㅜㅜ

태평포구에서 맛난 보말 수제비를 흡입 !! ^^ . 식당은 용왕난드르 향토음식점! 이 동네에선 제일 유명한 곳이라고 하더군요. 보말은 고동의 제주말이라고 합니다.  국물에 빠진 보말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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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1-1코스는 바로 우도입니다.

성산 일출봉 아래 성산항에서 배를 타고 약 15분정도 가면 우도 천진항에 도착합니다. 총 15.9km로, 완주하는데 4~5시간 걸리기 때문에 저는 일부 구간만 걸었습니다. 제주에 갈때마다 우도를 한번 가봐야지 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기회를 얻었습니다.

 

배에서 바라본 우도의 모습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우도 절벽에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굴을 볼 수있습니다. 그 근처에서 낚시를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배를 타고 바위에 내려 낚시를 하다가 일정 시간에 다시 배를 타고 섬으로 올라오는 것같았습니다.

 

 

우도에 있는 올레 코스 표시입니다.

 

 

걷다가 이 표시를 보면 은근 반갑더라구요. 마치 벌써 올레꾼이라도 된 양... ^^

우도 길은 아주 평평한 것이 정말 느릿느릿 산책하면서 걸을 수있었습니다. 마을 골목길을 걸으면 고양이와 강아지들에게 인사도 하고요.

제주와 우도의 개들은 어찌나 순하던지, 풀어놓고 키워서 그런지 전혀 사납지가 않더라고요. 행복한 섬 개들이었습니다.

이 순둥이 개는 사람들이 아무리 오가도 잔디밭에 떡하니 누워 잘 일어나지도 않더라고요. 사람들이 쓰다듬고 만지고 그래도 내버려두고,

먹을 것을 주면 고개만 조금 올려 받아 먹곤 했습니다. 아직도 눈에 삼삼하네요..

 

 

소원을 비는 돌탑 공원입니다. 저도 무지 많이 쌓았답니다..

 

 

아담한 숲길을 지나면 마을 길이 이어집니다.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네요.

 

 

 

 

 

우도봉 아랫자락에 만난 말과 커다란 하얀개 개 '상미'입니다. 상근이와 같은 그레이트 피레네즈 종 같은데, 그래선지 이름을 상미라고 지은 모양입니다. 어찌나 순한지, 눈만 껌뻑껌뻑... 동네 사람들 전체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것같더군요.

 

 

 

 

우도와 연결된 비양도의 표석과 투명한 바닷물입니다. 바닷물 아래 돌맹이들이 들여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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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의 제주의 추억>

 

난생처음 한라산을 올랐습니다. 별 준비도 없이... 조금 춥기는 했지만, 올라보니 완전 눈꽃천지에 바람도 엄청나게 불었지만 윗새오름의 광활한 풍경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언젠가 꼭 백록담을 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내려왔답니다. 등산인으로 변신할지도...

저는 영실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토요일이어선지 오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등산로 입구의 표지판입니다.

 

 

 

해발 1500m의 표지석과 눈꽃모습, 윗세오름으로 향하는 길의 풍경입니다.

 

 

 

 

 

 

요즘 제주 전체가 귤천지입니다. 초록색 잎사귀 틈틈이 매달린 주황색 귤들이 어찌나 싱싱하고 예쁘던지... 왠만한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맛은 또 어찌나 상큼하던지요. 어린시절 한겨울 하도 귤을 먹어대는 바람에 손바닥이 노랗게 됐던 일이 생각나네요.

 

 

제주의 관광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올레길은 시장 이름도 바꿔놓았습니다. 올레 재단 서명숙씨의 어머니의 가게가 있었던 시장으로 유명해진 곳인데, 이름도 올레시장으로 바뀌었어요.

 

 

이번 여행길에 제가 묵은 곳은 B&B 알레올레였습니다.  제주에 가면 언제나 호텔에서 묵었는데 이번에는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커다란 래브라도 개 우리가 저를 맞아주는 소박한 숙소였습니다.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 삶의 방식이란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인터넷에서 나름 명성이 자자한 곳이더군요. 물론 호텔처럼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제주를 더 깊이 느낄 수있는 아주 인상적인 곳이었어요. 오랫동안 생각날 것같습니다.

주인 부부가 사시는 본채와 손님용 별채의 모습입니다. 중간의 정원은 모두 주인 부부께서 키우는 유기농 야채밭이고요. 내부에는 난로가 자리잡고 있는데, 통나무가 타면서 탁탁거리는 소리가 정말 듣기 좋습니다. 우리도 사랑스럽고요... 맹인인도견 훈련을 받다가 넘 발랄했는지 떨어졌던 아픔이 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