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변화 모색하는 영국의 복지제도

bluefox61 2014. 4. 17. 10:56

복지선진국 영국이 변화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핵심 철학은 그대로 지키면서도,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해 과잉복지를 줄이고 방만한 구조를 개혁하며 개인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영국 런던 북쪽 킹스크로스 역 인근 노스로드 지역은 전형적인 중하층 거주지이다. 소박한 상점들이 밀집해있는 이 곳의 한 건물에 영국의 대표적 리크루트기업인 리드(Reed)그룹의 '리드 인 파트너십(Reed In Partnership)'  사무소가 자리잡고 있다.
 

민·관협력 '실업자 맞춤형 서비스'


'리드 인 파트너십'은 지난 2011년 6월부터 정부와 5년 계약을 맺고 중장기 실업자들을 위한 일자리 정보제공, 구직 알선, 직업교육은 물론 청소년 멘토링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일자리와 사회보호수당 지급 서비스를 한자리에서 제공하는 잡센터플러스(The JobcentrePlus) 가 고용연금부 산하 정부기관인 반면, '리드 인 파트너십'은 실업자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주기 위한 일종의 민·관협력업체이다. 


우리나라의 안전행정부·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가 최근 전국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고용·복지·금융 원스톱 서비스센터가 영국 정부기관인 '잡센터플러스'를 모델로 하고 있다면, '리드 인 파트너십'은 '잡센터플러스'의 민간 버전인 셈이다.

 

 

2010년 정권을 잡은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가 대대적인 복지개혁을 단행하고, 실업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지방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강화하면서'리드 인 파트너십'과 같은 민간회사들의 역할과 책임은 과거보다 훨씬 더 커졌다. '리드 인 파트너십'이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지난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12만 5000명이 이 곳을 통해 일자리를 찾았다. '리드 인 파트너십'같은 회사가 런던에만 3개, 전국적으로는 39개가 있다.
 

지난 9일 노스로드의 '리드 인 파트너십'사무소를 찾았을 때, 오전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구직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운영매니저인 닉 모간은 " 우리의 목표는 인력개발을 위한 최고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라면서 " 단순한 일자리 알선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장애인, 사회부적응자, 학교 중퇴 청소년 등을 위한 멘토링과 직업교육까지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청하면 2일 내 반드시 연락, 신속·장기 무료서비스


주목할만 부분은 이 모든 서비스가 무료라는 점이다. 구직자는 무료상담으로 일자리를 얻고, '리드 인 파트너십'은 고객이 6개월 이상 고용상태를 유지하면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다. 장기실업자, 장애자를 취업시키면 가산점이 부과된다. 고객이 신청서를 제출하면 상담사는 반드시  2일 내에 반드시 연락을 취하고 , 4주에 한번씩 고객과 직접 만나 일자리 상황을 논의하며, 2년 간 의무적으로 커리어를 관리해줘야 한다. 한마디로 신속·장기 무료서비스이다. 
 

"회사 입장에서 이전 노동당 정부 때와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계약조건이다. 정부와 계약을 맺고 구직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이전과 같지만, 과거에는 정부 예산을 미리 받은 다음 취업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구조였다면 지금은 순전히 실적을 근거로 정부로부터 보수를 받고 있다. 


정부는 계약을 맺은 고용서비스 회사들의 성과를 평가해,가장 실적이 나쁜 회사에 갈 예산의 5%를 떼서 가장 잘한 회사에게 준다. 이런 식으로 회사 간의 치열한 경쟁을 유도해 실업자들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모간 매니저는 "먼저 고용 성과를 내야만 정부로부터 보수를 받기 때문에  회사입장에선 솔직히 더 힘들어졌다"며,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된 후 경쟁사 한 곳이 문을 닫았다고 귀뜸해줬다.

영국 정부가 '리드 인 파트너십'같은 민간회사에 과감히 힘을 실어주는 가장 큰 이유는 실업자를 일터로 끌어냄으로써 실업수당으로 나가는 정부예산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영국의 현재 실업률은 7.2%(2013년 11월∼2014년 1월 기준)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117만건(2월 기준)에 이른다. 최근 영국 경제가 되살아나면서 실업률이 꺾이는 추세이지만,'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여전히 정부와 기업의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 '일자리가 곧 최고의 복지'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민간의 노하우를 과감히 도입하는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옛말, 영국의 사회복지의 변화


영국은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지난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를 통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체제를 구축한 국가이다. 2013/14년도 정부 지출 7200억 파운드(약1254조원) 중 각종 복지에 2510억 파운드(약 34.9%), 전국민 무상의료체계인 '국가의료서비스(NHS)'에  1370억 파운드를 쓴다.국내총생산(GDP)대비 공공사회지출 규모가 한국의 2.6배이다. 

 

지난 2010년 집권한 보수·자민연정은 재정적자 감축과 고령화 사회로 인한 복지부담을 덜기 위해 대대적인 복지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자동등록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시작으로, 지난 한해동안 상위 15% 고소득계층에 대한 아동수당 삭감, 보편적 무상의료 원칙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환자선택권을 강화한 NHS구조개혁, 30가지 이상의 복잡한 복지급여 및 세액공제체계를 하나로 통합해 행정비용과 복지사기를 줄이기 위한 '유니버설 크레딧' 도입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2016년 4월부터는 기존의 기초국민연금(BSP)와 부가국민연금(AP)를 통합한 새 기초연금(The Single-tier pension)'도 도입될 예정이다.
 

현정부가 일부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복지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지속가능한 복지체계가 되기 위해서는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복지제도는 보수당뿐만 아니라 노동당 정권에서도 여러차례 수정·보완돼온 것이 사실이다. 


노동당 예비내각의 리엄 번 노동연금부 장관은 지난 2012년 베버리지 보고서 70주년을 맞아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윌리엄 베버리지가 살아있다면 더 강력한 복지개혁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력을 촉구했을 것"이라고 주장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영리 여론조사기관인 데모스(Demos)의 리서치디렉터 던컨 오리어리는 지난 8일 인터뷰에서 "여론조사 결과 대다수 영국 국민들이 복지제도에 대해 여전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현 운영 시스템에 대한 불만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특히 일하지 않고도 돈을 받는 실업수당에 대한 불만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