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바그다드에 간 이란군 사령관 카셈 술레이마니는 누구?

bluefox61 2014. 6. 17. 17:10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최정예 부대 쿠드스의 카셈 술레이마니 사령관이 이미 이라크에서 '군사작전실'을 세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AP통신에 의해 확인됐다.
 이라크 최고위급 안보 관계자는 16일 AP통신과 인터뷰에서 술라이마니 사령관이 이라크 내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와 카르발라 상황을 둘러봤으며, 이라크 정부군 및 시아파 민병대와 함께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 격퇴전략을 짜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란이 약 1만 명 규모의 쿠드스 2개 여단을 이라크에 지원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특히 "술라이마니가 이라크를 방문하기 전 미국 정부에 알렸다"고 말해, 버락 오바마 정부도 술레이마니의 이라크행을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바마 정부가 이라크 내전위기를 막기 위해 이란의 개입을 사실상 용인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어서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미국 폭스뉴스, 영국 가디언 등 외신들이 이란군의 이라크투입과 술레이마니 사령관의 바그다드 체류설을 보도한 적은 있지만, 미국 정부가 술레이마니의 이라크 행을 사전에 통보받았다는 보도가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지난 14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쿠드스 대원 150명과 민병조직 바시즈 대원 약 1500명이 이라크에 투입됐다는 외신보도를 공식부인했다.

 


 술레이마니는 이란 군부에서 가장 탄탄한 미국과의 공식,비공식적 채널을 가진 인사로 꼽힌다. 지난해 뉴요커지는 1979년 이란과의 외교단절 이후에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 사담 후세인 몰락 이후 이라크 새 정부 수립 과정에서 이란 측과 비공개 채널을 가동해왔으며, 술레이마니 사령관이 이란측 채널의 핵심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16일 야후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라크의 통합과 주권을 존중할 준비가 돼 있다면 이란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한지 불과 몇시간 뒤, 국방부는 " 이란과 군사활동을 조정할 계획이나 의도는 결코 없다"고 분명한 선을 긋고 나섰다. 조지 어니스트 백악관 부대변인도 기자간담회에서 "이란 정권과의 어떤 대화에서도 군사 협력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고,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 역시 정례 브리핑에서 "16일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이란핵 협상에서 군사협력 방안은 논의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AP 통신 등은 국방부와 백악관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이란과의 대화' 용의가 있다는 케리 장관의 발언이 이란과의 '군사협력'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으로 해석될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실력자이며,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중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다.”
1990년대 중동지역에서 비밀 작전 수행을 담당했던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존 맥과이어는 이란 혁명수비대(IRGC) 산하 정예 부대인 알 쿠드스의 카셈 술레이마니(56) 사령관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란 간 막후 협상을 이끌었던 이란의 ‘그림자 실세’ 술레이마니는 중동지역 유력자를 뒤에서 조종하는 ‘파워브로커’로 불려왔다. 이란 동부 산악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술레이마니는 22세가 되던 1979년 이란에서 일어난 이슬람 혁명과 이듬해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종교적 신앙심이 깊었던 술레이마니는 IRGC에 입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양국 국경지대에서 군인으로서 탁월한 전투 및 정찰 능력을 보여 일약 젊은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전쟁후 능력을 인정받아 IRGC 사령관의 위치에까지 오르게 됐다.

 

지난해 9월 30일 미국 시사주간지 더 뉴요커에 따르면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중동지역에서 대테러전쟁을 벌이면서 이란 측과 비공개채널을 가동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국-이란 간 협상의 주인공은 미 국무부 소속 라이언 크로커 대사와 이란 혁명수비대 산하 정예 부대인 알 쿠드스의 카셈 술레이마니 사령관이다. 중동전문가인 크로커는 1990년대 초부터 레바논, 쿠웨이트, 시리아, 파키스탄, 이라크, 아프간에서 미국 대사로 활동했다. 더 뉴요커에 따르면 9·11 테러 이후 아프간 전쟁을 시작한 미국은 탈레반 소탕전에서 이란측으로부터 고급정보를 받았다. 이란은 아프간내 시아파를 탄압하는 탈레반 세력을 제거하기를 원했으며, 이것은 공동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2011년 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란 외교관들과 회동을 가진 크로커는 이들을 통해 술레이마니와 접촉했으며, 그 결과 이란 측은 크로커에게 구체적인 탈레반 병력 배치도는 물론 어느 부대를 먼저 공격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전술적인 조언을 제공하기도 했다.

탈레반 소탕에서 쌓은 미국과 이란 간 협력전선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라크를 방문한 크로커는 사담 후세인 독재정부 붕괴 이후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 구성 작업에 관여하며 이란과 협력을 재개했다. 크로커는 이란으로 건너간 이라크 정치인들을 통해 술레이마니와 접촉,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의 시아파 후보 명단을 건넸다. 보도에 따르면 크로커는 술레이마니가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후보를 낙마시키는 방법으로 의견을 조율했다.

그러나 이란이 아프간과 이라크에 이어 미국의 차기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란 내부에서 확산되면서 이란과 미국관계에는 금이 갔고 대화채널도 중단됐다. 이후 술레이마니는 이란 및 헤즈볼라 아래에서 훈련받은 무장조직, 이라크 정규 군대 조직 일부 및 시아파 단체를 동원해 미국인 사살작전 등을 벌였다. 최근 들어 술레이마니는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 깊이 관여하며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과의 갈등도 깊어지는 형국이다. 중동지역 내 종파 간 갈등을 부추겨 시아파 조직을 시리아 내전에 투입시키고, 이라크 항로 등을 이용해 군수품을 공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더 뉴요커는 전했다. 시리아 사태의 해결과 관련해 미국-이란 간 물밑 협상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