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로 본 세상 60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마스터'와 사이언톨로지

'젊은 거장(43)'이라 불려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는 폴 토머스 앤더슨이 '데어 윌 비 블러드' 이후 5년만에 내놓은 '마스터'는 쉽지 않은 작품이다. 영화는 2차세계대전이 막 끝난 미국을 배경으로, 알콜중독자이자 성에 퇴행적으로 집착하는 남자 프레디 퀠(호아킨 피닉스)이란 인물의 삶을 따라가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사회부적응자인 퀠이 우연히 찾아들어간 요트에서 랭카스터란 미스터리한 '마스터(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를 만나게 되고, 랭카스터는 곧 퀠의 마스터가 된다. 둘은 '유사 부자관계'이다. 하지만 결국 둘의 관계는 끝나게 되는데, 이후 퀠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아무런 단서도 주지않은채 엔딩타이틀이 올라가면, 관객들은 다소 어리둥절한 느낌에 빠지게 된다. 퀠은 이제 '마스터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

잘가요 ..로저 에버트

지면과 TV를 넘나들며 재치있고 이해하기 쉬운 영화평론을 펼쳐온 로저 에버트(사진)가 10년넘는 암투병 끝에 결국 70세로 눈감았다. 그가 40년넘게 몸담아왔던 시카고선타임스 측은 4일 트위터를 통해 "오늘 전설적인 평론가 에버트가 작고했음을 심심한 애도와 함께 알린다"면서 "그 누구도 채울 수없는 구멍이 남게 됐다"고 독자와 팬들에게 알렸다. 에버트가 세번째 암 재발 사실을 직접 블로그로 알리고 재활의지를 나타낸지 불과 이틀만이다. 그는 지난 2일 올린 글에서 " 골반 골절상 치료 과정에서 암 재발을 확인했으며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 평론 일선에서 잠정 물러난다"고 밝힌 바 있다. 2002년 처음 갑상선 암 진단을 받았던 그는 2003년과 2006년에도 재발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해왔으며, 2006년에는..

영화 속 대처, 대처리즘, 대처시대

영국 영화 속에서 대처와 대처시대에 대한 묘사는 대체적으로 비판적입니다. 문화계 종사자들의 성향이 일반적으로 진보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국 사회에 대처시대가 남긴 상처가 워낙 깊고 크기 때문이기도 한 듯합니다. 사회의 그늘진 곳에 시선을 보내는 영화치고 대처시대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것은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개봉된 메릴 스트립 주연의 '철의 여인'이 현대사의 거인 대처를 치매노인으로 그렸다는 지적을 받기는 했지만, 사실 대처와 대처시대를 다룬 다른 영화들에 비한다면 인간적이라고 할 수있을 정도입니다. 대처의 죽음을 계기로 , 대처 시대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가장 최근작인 '철의 여인(Iron Lady)'입니다. 영국 여성감독 필리다 로이드의 2011년도 작품입..

오시마 나기사를 추억하다

누구에게나 '내 인생의 영화' 리스트가 있을 겁니다.내 경우, 어린시절의 영화에는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과 줄리 앤드류스의 '사운드 오브 뮤직',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잊혀진 스페인의 꼬마뮤지컬요정 마리솔의 음악영화들이 있었지요. 성인이 되면서 정말 많은 영화들을 섭렵했지만, 일본영화에 빠져 지낸 한시절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 오시마 나기사가 있었습니다.그 시절 '다른영화'를 보는 거의 유일한 창구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경복궁앞 프랑스 문화원의 시네마테크였지요.그곳에서 상영되는 영화들 중 유난히 매회 상영때마다 전석매진(기껏해야 100석도 안되지만)은 물론이고, 계단에 앉아서라도 기어이 보겠다는 사람들이 몰리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오시마 나기사의 그 유명한 '감각의 제국'이었지요. 수십년..

서칭포슈거맨, 남아공 그리고 2012년 미국

우드스탁 이후 서구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는? 남아공 백인 아프리카너에겐 밥 딜런, 닐 영, 그리고 시스토 로드리게스이다.딜런과 영은 알겠는데, 시스토 로드리게스는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영화 '서칭 포 슈거맨'을 본 사람이라면, 3대 아티스트에 디트로이의 70세 무명가수 시스토 로드리게스를 주저없이 꼽을게 분명하다. '서칭 포 슈거맨'은 올해초 선댄스영화제에서 선풍적인 인기와 화제를 일으켰고, 내년 아카데미 영화상 다큐부문 유력 후보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작품이다. 70년대에 2장의 앨범을 내고 철저히 실패한 후 디트로이트에서 막노동으로 살아온 남자. 그러나 남아공에서는 아파트르헤이트를 거부하는 백인 아프리카너들의 상처받은 영혼과 좌절감을 달래줬던 걸출한 가수, 40여년만에 남아공의 열혈..

[비우티풀]과 스페인 경제위기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이 유로존 위기의 핵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유럽 4위 경제대국인 스페인 경제는 이미 2010년부터 추락할대로 추락한 상태입니다. 노동인구 4명 중 1명이 실업자이고, 25세 이하 청년 2명 중 1명이 현재 실업상태입니다. 정부가 지난 8일 은행구제금융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중병 든 스페인 경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할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외신에 등장하는 무미건조한 경제수치들을 들여다보면서, 지난해 국내 개봉됐던 멕시코 감독 알레한드로 이냐리투의 '비우티풀'을 생각하곤합니다. 도표나 지수에서는 결코 실감할 수없는 스페인 국민들의 고통이 이 영화에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유로존 위기를 수년째 들여다봐온 탓에 무감해질때마다 저는 '비우티풀'의 그 남자 욱스..

[카란디루]와 온두라스 교도소 참사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북쪽으로 90㎞ 떨어진 코마야과 교도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16일 현재까지 최소 365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교도소 안의 시신들이 심하게 훼손돼 DNA 및 치아 검사를 통해 사망자의 신원 확인 작업을 해야할정도라고 합니다. 소방 당국도 이날 화재를 진압하는 데 3시간 가까이 소요됐으며, 불길이 잡히고 나서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 보니 교도소 철장을 껴안은 채 타죽은 죄수들의 시신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온두라스 교도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이처럼 많은 수감자들이 사망한 데에는 교도소의 열악한 환경이 결정적인 원인이 됐습니다. 이 교도소는 정원이 900명 정도인데 재소자는 배가 넘는 2000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좁은 공간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았던거죠. 운영..

그리스의 양심 앙헬로풀로스를 추모하다

참으로 그다운 죽음이다. 자욱하게 안개낀 그리스의 쓸쓸한 부둣가, 차가운 눈발이 날리는 어느 지방 소도시의 거리, 내전으로 찢겨진 발칸반도를 떠돌아다니며 힘없는 민초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들의 슬픔과 위엄을 평생 필름에 담아냈던 영화감독의 죽음으로는 이보다 더 적절할 수는 없을 것같은 느낌이다. 그리스 영화계의 위대한 거장, 스크린의 시인으로 불렸던 76세 노장감독 테오 앙헬로풀로스가 25일 세상을 떠났다. 수도 아테네의 주항구인 피라에우스에서 영화 촬영 세트장쪽으로 가기위해 길을 건너려는 순간, 갑자기 오토바이 한대가 튀어나오더니 앙헬로풀로스를 쳤다. 노감독은 차가운 아스팔트에 넘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쳤고,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자신의 영화제목대로 그는 치명적인..

수치, 양자경, 미얀마... 그리고 ,영화 '더 레이디'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 정부가 12일 6300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면을 단행한 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양자경이 아웅산 수치를 연기한 영화 '더 레이디'가 공개됐습니다. 뤽 베송이 감독을 맡았다는 것이 좀 의외이기는 하지만, 양자경이 기가막힐정도로 수치의 이미지를 그대로 표현해낸 영화 스틸사진이 눈길을 끕니다. 군사독재정권에서 지난해 민간정부로 '겉모습'만 바뀐 미얀마에서 모처럼 변화가 일어나기는 나고 있는 것같습니다. 미얀마 관리들이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민족당(NLD) 당원 수백명을 포함해 정치범들이 수일내 사면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미뤄 이번 사면에 정치범들이 대거 포함됐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미얀마에서 민주화가 현실화될지, 평생을 조국을 위해 바친 수치의 앞날은 어찌될지 궁금해집니다...

[그을린 사랑]..레바논의 비극은 계속된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안에 불이 들어와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서기 힘듭니다. 이 가족을 덮친 비극적인 상황에 가슴이 아파서, 내 아이들만큼은 '증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진실을 마주하도록 만들어야한다는 한 어머니의 굳은 의지가 존경스러워서, 그리고 한때는 풍요롭고 자유로왔지만 끔찍한 내전에 풍비박산된 한 나라가 안타까워서, 아니 이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국가들의 국민들이 안타까워서.. 캐나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그을린 사랑(원제는 incendies. 우리말로는 '불에 그을려 타버린 사람들'이란 의미)'는 국내외 블럭버스터영화들이 넘쳐나는 8월의 국내 극장가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현재 개봉중인 덴마크 영화 '인 어 베터 월드'와 함께 올해 초 아카데미영화상 외국어상 부문(수상작은 '인 어 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