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 568

러시아, 재래무기 공격에 핵 응대?

러시아가 외부로부터 공격받을 경우 핵무기로 대응할 수있다는 발언이 러시아 정부 고위 인사의 입을 통해 나왔다. 이타르타스, 리아노보스티 등의 보도에 따르면 드미트리 로고진 부총리는 11일 국가두마에서 대정부 질의 시간 연설을 통해 "만일 러시아에 대한 공격이 가해진다면 우리는 당연히 핵무기를 이용한 방어에 나설 것"이라면서 "이는 러시아 군사독트린에도 명시돼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국가가 재래식 무기로 러시아를 공격해도, 러시아는 핵무기로 응대하겠다는 것이다. 로고진 부총리는 "우리는 위대한 균형자로서 핵무기의 역할을 한번도 과소평가한 적이 없다"며 "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러시아에 대한 도발과 공격을 억제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현지언론들은 로고진 부총리의 이날 발언이 미국의 재래식글로벌..

짜르 향수에 빠진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1613∼1917년) 400주년을 계기로 러시아에서 왕정 시대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 역사에서 왕정이 사라진지 96년, 소비에트체제가 붕괴된지 20여년만에 러시아 국민들의 가슴 속에서 왕실이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고 모스크바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FT), 보이스오브러시아 등이 최근 보도했다. 지난 11월 한달동안 모스크바를 뜨겁게 달궜던 전시회 '로마노프: 나의 역사'는 왕실에 대한 대중의 호감과 관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러시아 정교회, 문화부, 모스크바 시가 공동주최한 이 전시회는 로마노프 왕조의 1대 짜르(황제) 미하일 1세부터 볼셰비키 혁명으로 강제폐위돼 처형당했던 마지막 짜르 니콜라이 2세까지 로마노프 왕조의 역사와 유물을 한 눈에 볼 수있다..

파리 목숨된 러시아 국영언론사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1년 역사를 지닌 대표적 국영 통신사 리아노보스티와 84년 역사의 국영 라디오 '골로스 라시이(러시아의 목소리)'를 9일 전격 폐쇄했다. 크렘린은 국제사회에 러시아를 보다 효율적으로 알리고 예산을 줄이기 위해 두 언론사를 해체해 새로운 통신사'로시야 세고드냐'로 통합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소치 동계올림픽을 불과 2달여 앞두고 이같은 조치가 내려지자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있다. 더구나 로시아 세고드냐 사장에 임명된 인물은 러시아에서 가장유명한 반동성애주의자인 드미트리 키셀료프라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있다. 국영방송사 앵커 및 부사장 출신인 키셀료프는 야권인사들을 나치에 비유하고, 동성애자의 헌혈과 장기기증까지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해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러시아 현지..

만델라 브랜드를 지켜라... 와인부터 치킨까지, 지나친 상업화 경고등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하나의 '브랜드'이다. 평화와 화해의 브랜드이기도 하지만, 만델라의 얼굴과 이름만 박아넣으면 날개돋힌 듯 팔리는 '상표'로서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만델라 브랜드의 지나친 상업화로 인해 그의 정신이 훼손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8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만델라 브랜드'는 이미 상업화 위기에 처해있다.일각에서는 코카콜라처럼 글로벌 브랜드화하는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터져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만델라재단이 공식 허가한 '만델라 브랜드'는 약 40개. 만델라가 로벤섬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사용했던 죄수 번호 46664가 들어간 티셔츠, 팔찌 등을 제조하는 의류회사가 대표적인 예이다.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만델라기념관을 관리하고 있는 재단은 판권허가 수익과 기념관 입장..

만델라없는 남아공..어디로

2014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무너지고 흑인 정권이 들어선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다. 이 기간동안 남아공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지만, 흑백 간의 경제불평등은 더 악화되면서 계층간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20년간 이어져온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도 높다. 만델라의 타계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내년에 대선과 총선을 앞둔 제이컵 주마 대통령이다. 주마 대통령이 그동안 비판을 받으면서도 병석의 만델라를 무리하게 언론의 카메라 앞에 세우는가하면, 노쇠한 만델라의 생명연장에 지나칠정도로 매달려왔던 것은 그만큼 '만델라'라는 브랜드가 그에게 미치는 정치적 효과가 엄청났기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남아공에서는 ANC 핵심인사들의 이탈이 이어..

만델라의 주옥같은 어록.."사람이 위대한 것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기 때문"

-"27년의 옥살이가 내게 도움이 된 게있다면 고독의 정적을 통해 말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진실한 말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2000년 7월14일 남아공 더반에서 제13회 국제 에이즈 콘퍼런스 폐막연설) - "아프리카인은 남아프리카 전체를 공평하게 공유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안전과 사회에서의 몫을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무능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이 다수 유권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 나라의 백인에게는 이것이 혁명적인 것으로 들린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백인들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을 위해 ANC가 싸우는 것입니다. 그들의 투쟁은 진정으로 민족적인 것입니다. 아프리카인의 투..

키워드로 본 만델라의 생애

‘마디바’가 세상을 떠났다. 대통령과 노벨평화상 수상자란 명예로운 타이틀보다는 출신 부족의 이름에서 따온 마디바란 애칭으로 불리기를 더 좋아했던 남자, 27년에 걸친 수감생활에도 불구하고 평생 희망과 온화한 미소,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던 거인이 눈을 감았다. 넬슨 만델라가 전세계인의 존경을 받은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이란 점도 있지만, 화합을 통해 악명높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인종차별정책)시대를 평화롭게 종식했기 때문이다. 그가 없었다면 남아공은 백인정권에서 흑인정권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극도의 혼란과 유혈분쟁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그가 없었다면 남아공이 지금의 신흥경제국으로 성장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5개의 키워드를 중심을 만델라의 삶을 되돌아본다. 자유 만델라는 1918년 7월 ..

마디바가 떠났다.. 사진으로 본 만델라의 삶

전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이자 인권운동가인 넬슨 만델라가 임종했습니다. 그가 펴낸 자서전 제목 처럼, 그의 오랜 투쟁도 이제야 끝났습니다. 이제는 육신으로부터의 해방, 진정한 자유와 안식을 얻으셨을 겁니다. 만델라의 삶을 사진과 함께 생각해봅니다. A tribute to Madiba - Nelson Rolihlahla MandelaNELSON MANDELA - Cheered South Africa! Retirement? - Not so fast... In 1999 Nelson Mandela relinquished power - wishing to work with and help fellow South Africans. In this photograph he raises hands with his ..

NSA, 휴대전화 위치정보 매일 50억건 수집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전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50억 건에 달하는 휴대전화 위치정보를 수집해온 사실이 추가로 폭로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NSA가 미국 및 해외의 이동통신망에 불법으로 접속해 전세계적으로 휴대전화 수억 개를 추적해왔고 이 과정에서 하루 평균 50억 건의 위치정보를 수집했다고 전 NS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빼낸 문서를 토대로 4일 단독 보도했다. 앞서 지난 9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도 NSA가 iOS와 안드로이드OS는 물론, 비교적 보안이 안전하다고 알려진 블랙베리OS까지 해킹해 스마트폰에 담긴 이메일, 문자메시지, 연락처, 위치정보를 고스란히 수집할 수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폭로한 바있다. 하지만 위치정보 수집의 구체적인 규모와 방법이 드러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

우크라이나, 태국, 불통의 지도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크라이나와 태국이 반정부 시위로 연일 몸살을 앓고 있다. 태국 경우 조금씩 안정을 찾아나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시위의 불길이 수그러드는 기미가 없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사퇴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영하로 곤두박질치는 추위를 견뎌가며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태국의 시위는 역사적 배경과 직접적인 원인은 달라도 의외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길게는 수십년, 짧게는 10년 넘게 치열한 정치갈등을 겪어왔고, 민의를 가볍게 여긴 지도자의 행보가 시위의 불씨 역할을 했으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정치세력을 용인하지 않는 독단성, 단기간 내에 정치변화를 이룩하고자하는 국민들의 조급증 때문에 조용한 날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두 나라는 마치 쌍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