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88

칼럼/이탈리안잡

2003년 개봉된 영화 '이탈리안 잡(Italian Job)'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전문털이범들이 3500만달러 규모의 금괴를 빼돌리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제목은 말 그대로 '이탈리아에서의 일거리'즉 '한탕'을 의미하는데, 수많은 나라들 중 굳이 이탈리아가 배경이 된 것이 좀 심상치않아 보인다. 1969년판 동명 원작영화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이 이탈리아를 타이틀로 내세운 데에는 유럽 최고의 멋과 스타일을 자랑하는 동시에 왠지 허술한 인간적 매력이 넘치는 듯한 국가란 이미지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주연의 유명한 코미디 고전영화 '이탈리아식 이혼(1961년)'과 함께 69년판 '이탈리안 잡'이 영미권에서 꽤 인기가 있었던 탓인지, 영어 표현에서 '이탈리아식...'하면 '살짝 미..

말리와 알제리... '아프리카니스탄'의 오해와 진실

프랑스의 말리 내전 개입과 알제리의 천연가스전 인질사태를 계기로 요즘 국제뉴스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신조어가 있다. 바로 ‘아프리카니스탄’과 ‘사헬스탄’이다. ‘스탄(stan)’이란 페르시아어로 ‘땅’이란 뜻의 일반명사지만,최근엔 아프가니스탄을 상징하는 단어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니까 이들 신조어는 12년째 탈레반과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딜레마가 미국 등 서구사회를 얼마나 짓누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사실 아프리카는 아프가니스탄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아프리카 극단이슬람 테러의 뿌리가 아프가니스탄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수많은 북아프리카 청년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무자헤딘(전사)..

칼럼/ 자살률 1위인 나라에서 '제대로 잘 산다는 것'

몇해전 어느날, 퇴근하자마자 어머니가 잘 읽어보고나서 사인하라며 종이 한 장을 내미셨다. 당신의 마지막을 보내주는 방법을 당부하신 글이었다. "쓸데없는 소리마시라"고 치워버리고픈 마음을 누르고 일단 읽기 시작했다. 핵심은 간단했다. 마지막이 다가오거든 과도한 의료기술을 동원해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런 서류를 만들어 자식들에게 뜻을 알려놓는 분들이 주변에서 여럿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동의의 서명을 했다. 그 종이는 정갈한 흰 봉투에 넣어져, 지금도 서랍장 안에 고이 보관돼있다. 지난 2009년 병상의 김수환 추기경이 의료진에게 "의미없는 생명 연장을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말아 달라"면서 인공호흡기 사용을 거부한 사실이 전해져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기 훨씬..

베를루스코니의 이해할 수 없는 인기... 정치는 문화다

지난해 이 맘 때쯤 이탈리아에서 화제가 된 영화 한편이 있다. 제목은 '일 카이마노'. 이탈리아 어로 '악어'란 뜻이다. 풍자정신으로 유명한 나니 모레티 감독이 2006년 발표해 히트했던 이 작품이 뒤늦게 다시 관심을 모은 이유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당시 총리를 탐욕과 부패, 뒷거래와 조작의 달인으로 묘사한 내용 때문이었다. 강 둑 위에 죽은듯이 몇시간씩 꼼짝않고 누워있다가 순식간에 물 속으로 몸을 던져 먹이감을 잡아채는 카이만 악어와 권력쟁취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감각의 소유자 베를루스코니가 닮았다는 것이 모레티 감독이 전하고자하는 메시지였다. 이 영화가 개봉된 2006년 베를루스코니는 총선에 패배해 정계에서 물러났다가 2년 뒤인 2008년 컴백에 성공했고, 그로부터 3년뒤인 2011년..

칼럼/마이클 블룸버그..이 남자가 사는 법

이 남자, 볼수록 매력있다. 당적은 바꿀지언정 정치철학만큼은 굳건하게 지키고, 말보다는 행동을 앞세우며, 세상에서 가장 힘세다는 미국 대통령 보다 '일개' 시장 직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남자. 그래도 대통령에 출마해보라는 부추김에 "세상사람 다 사망하고 나 혼자 남기 전까지는 절대 그럴 일없다"고 딱부러지게 못밖을 때 진즉 알아봤다. 시민들의 몸무게와 영양상태가 걱정돼 도심의 금싸라기땅에 유기농 채소시장을 열고, 심지어 햄버거 가게 탄산음료의 컵크기까지 정해주는 사람, 범죄율을 줄이려면 가정이 회복돼야하고 그러기 위해선 기죽은 아버지를 바로세워야 한다면서 'NYC 아빠', 특히 흑인과 라틴계 아빠 지원프로그램을 시작한 시장님. 일부 시민들은 "당신이 우리 유모냐"며 지나친 간섭에 불편한 반응을 나타내지..

올랑드의 굴욕

오늘(9월27일)로 취임 135일째를 맞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가 심상치않다. 최근 Ifop 여론조사에서 올랑드의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지지율은 43%를 기록했다. 한달전 54%에서 무려 11% 포인트나 빠졌다.프랑스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 하락폭으로는 지난 10년내 최대기록이라니, 급전직하란 표현이 딱 어울린다. 2차세계대전 종전 후 이처럼 지지율이 폭락한 프랑스 대통령으로는 샤를 드골과 자크 시라크에 이어 올랑드가 세번째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드골은 1962년 알제리 독립을 인정한 에비앙 조약이후 지지율이 13%포인트나 떨어졌고, 시라크는 1995년 유럽연합(EU) 헌법부결이후 12% 포인트 급락을 경험했다. 올랑드의 수난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한 여론조사에선 응..

칼럼/'아틀라스: 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신'- 아인 랜드를 생각하다

아인 랜드의 1957년작 '아틀라스: 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신'을 붙잡고 씨름하면서 초여름의 한 때를 보낸 적이 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5권짜리 방대한 양도 양이지만, 절대적 자유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사상에 로맨스와 SF까지 한데 버무린 이 소설을 소화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랜드의 소설을 다시 손에 잡기는 '마천루(원제는 '파운틴헤드'·1943년작) '이후 십몇년만이다. 천재 건축가 주인공을 통해 모든 편견과 고난에 맞서는 영웅주의를 설파한 '마천루'가 랜드 사상의 대중보급판이라면, '아틀라스'는 작가의 모든 철학을 집대성한 완결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명성을 익히 알고도 막상 선뜻 첫장을 펼치기 꺼려졌던 심정을 랜드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아..

2012년 러시아, 아르바트

아르바트의 거리에 아이들은 없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가난한 젊은이들이 예술과 자유를 꿈꾸던 아르바트에는 관광객들과 그들을 호객하는 상인들이 넘쳐났다. 스몰렌스까야 역을 지나 아르바트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민주화와 개방경제체제가 시작되면서 들어섰다는 맥도날드햄버거의 엠(M)자 간판이다. 아랍 상인들의 장터 거리로 시작돼 2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폭 20m, 길이 약 2km의 이 거리에서 스타벅스와 던킨도넛의 익숙한 간판들을 바라보는 것은 묘한 경험이다. 지난 6일 아르바트를 찾았을 때, 이곳이 예술의 거리임을 느낄 수있는 것은 솔직히 푸슈킨이 잠시 살았다는 집과 동상, 소설 `아르바트의 아이들'의 작가 아나톨리 리바코프가 구부정한 자세로 어디론가 걸어가는 듯한 모습을 담은 동상, 그리..

칼럼/홀로코스트 배상하는 독일... 진정한 국격

"기념관을 왜 저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도통 좋은 줄 모르겠더라구요." 2년전 독일 베를린에서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로 가는 도중 운전사가 말을 걸었다. 택시는 돌로 만든 관인지 기둥인지 모를 수백, 아니 수천개의 네모난 조형물들이 꽉 들어차있는 장소 옆을 지나고 있었다. 운전사가 혹평한 그 곳은 2005년 개관한 홀로코스트 기념관. 잔혹한 인종말살 범죄 희생자들을 기리는 건축물로 과연 적당한 디자인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베를린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방인에겐 시내 한 복판, 그것도 베를린의 명물 브란덴부르크 문과 그리 멀지 않은 드넓은 장소에 2711개의 관 모양 조형물을 세워놓고 역사를 기억하는 독일의 정신은 감동 그 이상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때와 비슷한 감동을 최..

푸틴의 노련한 이미지 정치

서구 정치인들과 달리 러시아와 중국 정치인들의 사생활이 세계 언론에 노출되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일입니다. 미국 대통령이야 하다못해 핫도그 사먹는 사소한 일까지 언론에 노출되지만, 러시아와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의 개인적인 모습이 사진과 함께 대중에 소개되는 일은 이례적이라고 할수있습니다. 그러나 , 예외적인 인물이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입니다. 이분의 언론다루기와 이미지정치는 가히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능가할 정도입니다. 역대 러시아 지도자들 중 그만큼 사생활을 카메라 앞에 노출한 전례는 없습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사생활 사진이 보도되는 경우는 푸틴 총리보다 춸씬 적습니다. 푸틴에게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가장 처음 보여준 사진은 2007년 8월 전세계 통신사들..